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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기나긴 밤, 국립남도국악원 “국악의 향연”국립남도국악원은 오는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대극장 진악당(전남 진도)에서 "국악의 향연”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동짓날을 미리 맞이하여 가·무·악 종합공연 "국악의 향연”을 주제로 기악합주 <경풍년>을 시작으로, 가야금병창 단가, 무용 <장구춤>, 판소리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 기악합주 <시나위>와 남도민요 <동백타령>·<산아지타령>, 마지막으로 <판굿>과 <대동놀이>를 선보인다. 먼저 <경풍년>은 "풍년을 기뻐한다”라는 뜻을 지닌 곡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도 우리 모두의 풍년을 바라며 준비한 곡이다. 이어 가야금병창 단가 <백발가>와 춘향가 중 <갈까부다>를 들려준다. 단가 <백발가>는 "만고(萬古) 영웅과 진시황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한다”라는 내용으로 "백발이 되어 보니 인생은 허무하고 세상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춘향가 중 <갈까부다>는 남원 부사로 있던 몽룡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이별하게 된 후 춘향이 몽룡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표현한 대목을 노래한다. 다음 작품으로는 무용수가 직접 장구를 연주하며 추는 <장구춤>과 판소리 심청가 중 맹인잔치에 오지 않은 심봉사를 기다리는 심청의 애타는 심정부터 극적으로 상봉한 부녀의 모습과 기적적으로 심봉사의 눈이 떠지는 내용까지 담고 있는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부조화 속의 조화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시나위>, 남도민요 중 동백꽃을 따는 처녀들의 수줍은 마음과 총각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동백타령>과 경쾌한 장단으로 흥겨운 <산아지타령>까지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풍물굿”, "소고춤”, "진도북춤”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굿>, <대동놀이>로 풍성하고 흥겨운 작품으로 꾸며질 예정이다.한편, 국립남도국악원은 2004년 개원하여 지금까지 매년 상설공연으로 지역민들의 삶에 스며들어 국악 진흥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내년이면 개원 20주년을 맞이하게 되며, 내년에도 더욱 알차고 품격 있는 상설공연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자 최선의 준비를 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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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을 위한 공동체 음악, 상여소리6월 29일(목)과 30일(금),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정기공연 ‘꽃신 신고 훨훨’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지난 5월 부임한 유지숙 민속악단 예술감독의 첫 작품으로, 민속악단의 정기 공연으로는 최초로 상여소리를 주제로 하여 서도, 경기, 남도 지역의 상여소리 등 죽음을 다룬 노래와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지역별로 다른 상여소리를 통해 음악적으로 다양한 정서를 감상할 수 있던 이 무대에서는 민요, 잡가, 판소리, 무속음악 등이 다양하게 엮여 죽음과 삶에 우리 선조들이 대처했던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 징의 잔잔한 소리 위에 얹어진 유지숙 예술감독의 담담하지만 애절한 소리로 무대가 열렸다. 첫 무대는 ‘서도 상여소리’로, 북녘의 땅에서 불려 온 애잔한 소리이다. 임의 분묘를 찾아가 한탄하고 삶의 회한을 표현한 첫 곡 ‘제전’은 느려서인지 격하게 떠는 음이 많은 서도제의 특징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제전’에 이어 ‘상구소리’에서는 장구와 대금의 수성가락이 얹히며 인생의 덧없음이 더욱 애잔하게 표현되었고, 이어 ‘산염불’이 불렸다. 산염불은 선율의 길이가 서로 다른 앞소리와 2장단으로 된 후렴으로 구성되었는데, 후렴구에 나오는 ‘에헤야 에헤야~나무아미타불’ 등의 후렴구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등의 가사 위에 서도제의 색채가 짙게 묻어 마치 그 떠는소리가 울음 우는 소리처럼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이후 ‘황해도 배천 상여소리, 평양 상여소리’에서는 총 8명의 소리꾼이 나와 함께 노래했는데, 힘 있고 빠른 속도로 언뜻 경쾌하게 흘러가는 듯 들리기도 했지만, 애달프고 슬픈 가사로 인해 오히려 슬픔을 더욱 자아냈다. 북녘의 땅에서 불려 오던 서도제의 상여소리는 이 땅에서 많이 연주되지 않고 그 자료 또한 많지 않지만, ‘한’과’ ‘슬픔’이 서려 마음을 찢는듯한 그 애절한 선율은 공연장에 있던 모두를 울렸다. 다음으로는 가야금 병창 단가 ‘백발가’가 불렸다. "백발이 섧고 섧다. 백발이 섧고 섧네.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다.” 로 시작하여 세상사 서러움을 노래하는 이 곡은 사실 인생무상만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백발이 되고 보니 인생은 허무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니 명승지를 구경하며 즐기자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품고 있다. ‘백발가’를 세 명의 소리꾼이 밝은 평우조 음계로 구성지고 시원하게 불러내니, 꿋꿋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의 의지와 힘이 공연장에 가득 울려 퍼지며 관객들의 집중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죽음에 이르지만, 이를 그저 슬픔으로만 대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이 삶에 집중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고자 하였던 선조들의 지혜로운 태도가 가득 묻어난 무대였다. 세 번째로 경기 지방의 민요와 상여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마음을 돌아보는 노래’라는 의미의 ‘회심곡’과 잡가 ‘이별가’, 그리고 고양시에서 불리는 상여소리로 구성된 ‘경기 상여소리’는 경기 지방에서 불리던 소리의 특징과 힘, 그리고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회심곡’은 불법에 귀의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권하는 내용을, ‘이별가’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경기 지역의 민요이다. 살아가며 맺어지는 부모와 연인과의 관계, 그리고 연 가운데 얽히는 수많은 감정의 소리는 삶을 돌아보게 했고, 그 후 바로 이어진 ‘상여소리’는 인생과 관계의 흐름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바라의 챙챙거리는 소리로 인해 더 민속적이고 한국적이던 ‘회다지소리’에서는 많은 소리꾼이 함께 메기고 받으며 노래하고, 악사들이 간드러지며 힘 있는 반주로 함께 음악을 끌어 나가니 망자를 위로할 뿐 아니라 이 세상과 저승의 경계를 다지는 절연의 의지와 역동적인 몸짓이 잘 드러났다. 인생의 연속성을 나타낸 경기 지역 음악 세 곡을 통해 경제의 기교 있고 차분한 표현을 마주할 수 있었고, 인생과 삶, 사람 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생각하며 깊게 감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남도 상여소리’가 장식했다. ‘진도 다시래기’를 중심으로 엮어낸 무대. ‘진도 다시래기’는 진도지방에서 초상이 났을 때, 특히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 죽은 사람의 초상일 경우 동네 상여꾼들이 상제를 위로하고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축원하기 위해 전문예능인들을 불러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노는 민속극적 성격이 짙은 상여놀이이다. 신명나는 풍물패의 소리와 함께 가상제(거짓 상주 역할을 하는 배역이자 다시래기를 이끌어 가는 진행자 역할)와 풍물패가 관객석에서 등장하여 소란스레 무대로 향했다. 가상제는 유쾌하게 다시래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 명씩 호명해서 개인기를 펼치도록 유도했고, ‘거사’와 ‘사당’이 나와 연극형태의 연희를 벌였다. 이 연희에서는 ‘흥’에 초점을 두어 슬픔을 즐거움과 위로로 승화시켰는데, 재미있는 설정과 유희를 통해 떠들썩하게 즐기며 죽음의 상실감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흥취 가득한 재담과 개사를 통해 유쾌하고 해학적으로 불러낸 소리는 마치 마당놀이의 어느 한 과장을 보는 듯 즐거워 죽음의 슬픔을 어느샌가 밀어내는 힘이 있음을 느꼈다. 특히 마지막 아이를 낳는 장면은 죽음이 있더라도 새로운 삶 또한 함께한다는 인생의 고유 진리, 그리고 상실보다는 연속된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한바탕 관객들과 함께 즐거운 무대를 선보인 후 가상제가 물러나고, 민속음악의 꽃, ‘씻김’이 시작되었다. 진도에서 전승되는 망자 천도굿인 ‘진도씻김굿’. 이는 살아생전의 좋지 못했던 기억이나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을 깨끗이 씻어냄으로써, 망자가 수월하게 저승으로 가도록 돕는다. 기존 씻김굿은 체계적인 순서에 따라 길게 진행되지만, 이 공연에서는 무대화되어 짧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치 사람이 흐느껴 우는 듯한 진계면으로 이루어진 선율과 소리는 사람의 감정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하였고, 무언가 엄숙하면서도 경건하게 만드는 힘 또한 존재했다. 흰 한복을 입고 지전을 든 무용수들이 보여준 망자를 위한 천도 의례 ‘지전춤’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액을 막아주는 춤의 몸짓이 격렬하면서도 진실하여 진도씻김굿의 예술성을 더해주었다. 지전춤에 이어 소리꾼 정회석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등장하며 심청가 중 ‘상여소리’를 담담히 불러냈다. 정확히는 ‘곽씨 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으로, 중모리장단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템포 안에서 ‘이제 가면 언제 올거나’ 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그의 소리는 마음 한편을 아리게 만들었으며, 그 깊이 있는 성음은 판소리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그리고 자연스레 마지막 무대 ‘진도 상여소리’로 음악이 이어졌다. 진도의 상장례는 육지처럼 장례식을 엄숙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사물 악기를 앞세워 흥겨운 축제처럼 이어 나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죽음을 그저 슬픔과 아픔으로 여기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떠나간 이를 기억하고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공동체의 따뜻함에 마음이 풍성해졌다. 특히 이 무대에서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27-4호 고양 상여, 회다지소리 보존회의 상여꾼들이 특별출연하여 무대를 꾸렸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장례문화인 상여소리를 서울, 국립국악원의 무대에서 실제 보존회 회원들과 국악원 민속악단의 연주로 볼 수 있어 굉장히 의미 있고 가치 있었다.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이라는 부제의 공연 ‘꽃신 신고 훨훨’은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환으로 구성되어 삶과 죽음을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지 지역별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었고, 위로와 치유, 넉넉한 마음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무대는 음악을 넘어 우리의 소중한 장례 문화를 무대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전통 예술의 가치 있는 보존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섧고 아픈 죽음이 있기에, 기쁜 새 생명의 시작 또한 존재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옛 선조들의 마음을 깊이 새기며,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고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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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과 시작 ‘상여소리’, 무대예술로 만난다지역별 상여소리가 무대화 되어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은 올해 정기공연으로 지역별 상여소리를 한 데 엮은 ‘꽃신 신고 훨훨'. 오는 29일(목)과 30일(금) 이틀간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선보인다. '꽃신 신고 훨훨'은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 예술감독의 첫 정기공연으로, 그동안 민속악단 정기공연에서 무대 예술로 선보인 적이 없는 지역별 상여소리를 한 데 엮은 의미가 큰 공연이다. 상여소리는 ‘만가(輓歌)’, ‘장례소리’ 등으로 불리는 전국적 전승 전통의례음악이다. 현재 시도별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무형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 사이의 ‘마지막 축제’로 망자를 향한 슬픔과 그리움, 상여꾼들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힘을 돋우는 기능요이다. 다양한 감성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무대공연에서 접하기 어려운 상여소리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슬픔을 다 내려놓은 듯 처연하고 담담한 북녘의 소리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서도 상여소리’를 시작으로, 삶의 인연과 그로 인해 얽히는 다양한 감정을 노래하는 ‘경기 상여소리’가 그 뒤를 잇는다. 마지막 ‘남도 상여소리’ 에서는 미련까지 훨훨 날려 보내는 신명과 다채로운 장단이 어우러져 흥겨움을 더할 예정이다. 지역별로 다른 상여소리를 통해 음악적으로 다양한 정서를 담아냈고, 민요 잡가, 판소리, 무속음악 등을 한데 엮어 민속음악에 담긴 삶과 죽음의 조각을 함께 이어 구성했다. 지역별 상여소리 외에도 제전과 상구소리, 산염불, 가야금 병창 백발가, 회심곡, 이별가, 진도다시래기, 진도 씻김굿과 지전춤, 판소리 심청가 중 상여소리 등 삶의 다양한 순간을 노래하는 지역별 민요와 병창, 판소리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유지숙 감독은 "이번 공연으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옛사람들의 관점에서 오늘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고 잔잔하게 그 안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민속악단의 소리극 ‘까막눈의 왕’을 연출했던 정호붕 중앙대학교 교수가 연출을 맡아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을 기약하는 잔치로 이번 공연을 꾸며 무대에 선보일 예정이다. 다소 무거울 듯한 주제가 어떻게 무대공연으로 새롭게 선보일지 기대되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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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음성의 전통문화유산 재조명과 활성화 방안' 학술대회 성료충북 음성군은 전통문화의 연구 성과를 되돌아 보기 위해 ‘음성의 전통문화유산 재조명과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고 6일 밝혔다.군은 중고제 명창 염계달의 득음터로 알려졌지만 관련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이에 염계달과 관련된 학계의 고증과 학술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공론화를 위해 이번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서는 강연에 이어 3개의 주제발표와 판소리 공연 후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이창신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는 강연에서 "충북지역 역시 뚜렷한 문화 예술적 독창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이 교수는 특히 "중고제 판소리 명창인 염계달이 음성 가섭사에서 득음하였다는 최근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는 명확한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며 향후 더 많은 역사적 기록의 검토와 연구 등 고증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서영숙 한남대학교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음성민요를 노동요와 의식요, 유희요로 구분해 전승양상을 소개하고 향후 음성민요의 활용 방안으로 아카이브 구축과 보급, 민요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지원, 민요의 교육 홍보와 재창작 진작 등 세가지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이어 이종달 동방판소리문화원 원장은 "‘조선창극사’에 기록된 염계달의 득음터인 ‘벽절’의 위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이 원장은 "다만 음성군이 선생님의 유허지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므로 향후 염계달의 위상정립과 판소리 전승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윤경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거북놀이의 특징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음성군의 거북놀이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경기 이천, 평택 등 다른 지역의 사례처럼 전수조사를 진행한다면 향후 거북놀이 전승을 이루는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임기현 충북학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이어진 종합토론은 지정 토론 이외에도 방청객의 질의응답이 이어지며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특히 음성 ‘벽절’이 어디인지에 대한 추가 질의가 이어졌는데 정노식이 지은 ‘조선창극사’가 염계달 선생이 활동했던 당대의 기록이 아닌 후대 구술기록인 점을 고려해 앞으로 추가적인 고증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한편 군 관계자는 "이번 학술대회의 내용을 반영해 향후 음성지역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활용 방안을 수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한편 이날 판소리 공연에서는 ‘백발가/이동백제’와 ‘염계달 소리제’로 소리는 이종달 씨(서울전통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고수 홍석렬 씨(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가 맡아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음성군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으며 학술대회 자료집은 충북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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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예능 원조, ‘판소리 명창대첩 광대전 6’"아! 나 광대전 섭외됐다!” 출연한 서의철 소리꾼이 섭외 소식을 받았을 때의 소감을 말했다. ‘판소리 명창대첩 광대전(廣大戰)’은 판소리의 본고장 전주(MBC)에서, 판소리를 지키고 대중화 하고자 2012년 첫 방송을 통해 국악 예능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박애리, 왕기석, 왕기철, 장문희 등의 국악스타를 배출하고, 국악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이제 젊은 소리꾼의 꿈의 무대가 되어, 2022년, 6번째 시즌으로 지난 9월 29일(목) 밤 11시20분 시청자를 찾아갔다. 국내 내로라하는 젊은 소리꾼 8인이 A,B 조로 나뉘어 조 대결로, 총 6회로 방영되며, 각 회차 마다 색다른 구성으로 보고 듣는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1회는 민요, 단가, 창극 등으로 겨루었으며, 매 회마다 가장 많이 득표한 우승자도 가린다. 자문위원으로 송재영 명창(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왕기석 명창(국립민속국악원장), 송미경 박사(판소리학회 이사)가 참여했으며,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청중평가단이 심사했다. 출연자들 간의 팽팽한 긴장과 완벽한 무대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축이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장르의 소리를 감상하고, 승패의 주인공이 누가 될 것인지를 예상하는 재미도 있다. 무대는 전주대사습청 특설무대. 탁 트인 하늘 아래, 무대와 관객은 눈빛까지 교감할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옛 시절 소리판이 벌려졌던 어느 마당을 떠올린다. 첫 출연자의 무대가 시작됐다. 정승희 / 백발가 애절함이 끓어 오는 첫 소절로 관객을 집중시킨다. 거문고의 연주도 함께 했다. 이 능숙한 젊은 소리꾼은 관객과 눈 맞춤으로 교감하기도, 흥을 돋우기도, 때로는 절절한 감성으로 듣는 이의 눈물을 쏙 빼기도 한다. 눈앞에서 관객의 표정까지 느끼는 예인의 행복감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기대에 찬 외국인들의 표정은 한껏 진지했다. 강길원 / 사철가 "떨림보다는 설레임이 더 있어요. ‘광대전’ 첫 번째부터 시청해왔는데, ‘난 언제 출연하나, 아직 공부가 안됐나’ 했는데, 이번에 연락이 온 거거든요.”라고 출연의 감격을 밝혔다. 가야금(조옥선)과 장고 조용안 명고(전북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장단 보유자, 2019)도 함께 하는 무대.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 오늘 백발 한심 하구나 /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 반겨한들 쓸 데 있나...” 내공 깊은 젊은 소리꾼은 관객과 눈을 맞추며, 발림은 감성을 담아 여유롭다. 연세 지긋하신 노(老)관객은 눈을 떼지 못한다. 온 에너지를 발산하는 열창은, 곡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그것을 분주하게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도 보인다. 관객 앞의 소리꾼은 행복했고, 즐기는 듯 보인다. 곡이 끝나고 관객은 그에 화답하듯 환호했다. 신진원 / 신민요 ‘들국화’, 흥타령 이번 출연자는 신민요로 도전한다. 경쾌한 곡이고 무대 뒤에 작은 연주단도 있어 곡은 더욱 풍성하고,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2022년 젊은 소리꾼의 광대전이 열리는 날이라...’ 등으로 개사하여 듣는 재미도 있다. ‘신민요’라는 국악의 색다른 모습을 만나는 무대였다. 김나니 / 신 사철가 시종일관 웃으며, 관객들과 눈 맞추는 무대매너가 매력인 소리꾼이다. 경쾌한 곡으로 관객의 흥을 만들어간다. 곡의 절정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한 것을 뽑아내려는 모습은 소리꾼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 최호성x서의철 / 춘향가중 ‘방자 편지 전하러 가는 대목‘(창극) 노래와 대사가 있는 창극. 극적인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 두 사람의 호흡은 찰떡같았으며, 짧은 시간 해학, 감동을 모두 경험하게 한다. 이들의 찰진 연기로 볼수록 빠져들게 만든다. 당대의 언어유희, 해학까지 느끼는 재미도 있다. 이몽룡 : 너, 어디 사는 애냐 ? 방자 : 다 죽고, 나만 사는데 살아요. 이몽룡 : 이놈아, 이 세상에 너 혼자 사는 데가 어디 있단 말이더냐. 방자 : 아, 나만(남원) 사니께 나만(남원) 산다 안하요. 이몰룡 : 오라, 너 남원 산다는 말이로구나.’ 방자 : 오메, 맞췄어 맞춰... 조용안 명고의 "좋다”, "좋지” 등의 추임새는 정겨우면서도, 듣는 이의 흥을 돋운다. 춘향이 전하는 애절한 편지를 읽는 이몽룡의 소리는 슬픔과 애통함마저 느껴진다. 관객들은 때로는 장단을 마주기도,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극의 몰입도는 한층 더 높아졌다. 이소연x유태평양 /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 소리꾼 유태평양은 "광대전을 대학교때부터 보면서 자랐거든요. 나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설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했고, 무대에 올라서 첫 인사를 했을 때 그 떨림이 장난 아니더라고요.”라는 소감을 밝혔다.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여성의 소리, 시원하고 힘 있는 남성의 소리가 단연 돋보였다. 출연자들의 애절한 연기와 함께 혼신의 힘을 쏟는 대목에서는 더욱 몰입하고, 그 서사와 애절함에 가슴마저 뭉클하다. "천신이 감동하사 저는 살아 왔삽는데 부처는 영험 없어 눈을 그저 못 보시니 어찌해야 되오리까” 심봉사가 눈 뜨는 대목에서, 감동은 절정에 이르며, 관객은 환호하고 현장은 하나가 된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청중평가단 심사가 이루어진다. 결과 발표에서 승패가 나뉘고, 개인 우승자도 발표되었다. 작창으로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은 국악 예능에서만 볼 수 있는 백미이다. 1회에서는 소리의 원형을 중심으로 한 대결이었으며, 각 회 마다 색다른 구성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기획·연출을 맡은 김현찬 PD는 이 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재 한류가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데, 언젠가는 국악예술이 각광을 받을 날이 올 겁니다. 그 곳에 가기까지, 이 프로그램이 밀알이 되어 일조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우리 국악이 월드 뮤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작진은 4-6회차 방영분을 위한 녹화에 참여할 청중평가단을 모집 중이다. 녹화는 10월 15일(토) 전주대사습청에서 있을 예정이며, 전주MBC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제작진에 따르면, 평가단에게는 소정의 간식을 제공할 예정이며, 청중평가단 외에도 현장에서 선착순 입장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국내 최고 젊은 소리꾼들의 신명나는 무대를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1회 재방송은 10.1(토) 오전 8시20분, 2회부터 본방송은 매주 목요일 밤 11시 20분, 재방송은 토요일 오전 8시 20분에 방영된다. 전주MBC 오리지널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되며, 서울MBC와 국악방송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현재 1회는 유튜브를 통해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회차 별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2회 ‘판소리 MBTI’ 3회 ‘오마주(헌정) 무대’ 4회 ‘환상의 호흡Ⅰ’ 5회 ‘환상의 호흡Ⅱ’ 6회 ‘단짠단짠 대결’ (흥(興)과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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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연정국악단, ‘성악의 밤-民饒(민요)하다’공연대전시립연정국악단이 오는 5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제182회 정기공연 ‘성악의 밤 - 民饒(민요)하다’를 국악원 큰마당 무대에 올린다고 밝혔다. ‘民饒(민요)하다’는 ‘백성의 삶이 넉넉하다’라는 뜻으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 민요를 통해 온가족이 다함께 넉넉한 삶을 보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선보이는 공연이다. 민요를 주제로 공연을 선보이는 만큼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성악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별, 시대별 음악적 특색을 지닌 우리 노래의 매력을 전한다. 이번 공연은 임교민(안산시립국악단 부지휘자)의 객원지휘로 국악관현악으로 재창조된 민요 협주곡들을 구성하여, 민요 본연의 매력뿐 아니라 현대적 감성을 입힌 민요의 무궁무진한 변화까지 만나볼 수 있다. 첫 번째 무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인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을 테마로 작곡한 국악관현악 ‘남도아리랑’을 선보여 한국음악의 멋과 흥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두 번째 무대는 청아한 소리의 멋, 경기민요 중 ‘회심곡’과 협주곡 ‘경기민요 모음곡’을 연이어 선보인다. 특히 ‘회심곡’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바르게 살아갈 것을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으로, 명창 이호연(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승교육사)의 소리로 효심을 전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무대는 짙은 성음의 멋, 남도민요를 만나보는 시간이다. 남도의 멋이 담겨 있어 명창들이 빼놓지 않고 부르는 명곡인 ‘흥타령’과 ‘성주풀이와 화초사거리’를 협주곡으로 선보인다. 네 번째 무대는 자연 그대로의 멋을 전하는 국악관현악 ‘숲과 사람’이 준비되어 있다. 다섯 번째는 소리와 악기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가야금병창 무대로 단가 ‘백발가’와 협주곡 ‘가야금병창 연곡’을 선보인다. 특별히 단가 ‘백발가’는 명창 강정숙(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의 소리로 오랜 연륜이 주는 깊은 삶의 지혜를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무대로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이 담긴 정가 중 협주곡 ‘편수대엽 모란은’과 협주곡 ‘곡(曲) 태평성대’를 선보여 정가의 고풍스러운 매력을 전한다.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이영일 원장은 "예로부터 불려오던 우리 노래가 국악관현악과 함께 재창조되어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풍성한 무대를 마련했으니,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온가족이 다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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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 정창관의 신보유람 & 명반유람 67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지금은 국가기관이나 국악관련단체에서 CD음반을 잘 출반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북대학교와 남원시가 ‘남원시 국악아카이브선집’이라는 이름으로 제1집 ‘정회천 국악자료’음반을 출반하였다. 1집이라고 한 것은 앞으로 계속 시리즈로 출반한다는 의미이니 매우 기대하는 바이다. 이 음반에는 1991년 10월 11일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린 제1회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 공연, 강도근 명창의 흥보가 완창 공연에 즈음하여 정회천 선생과 진행한 대담 자료이다. 강도근 명창은 1918년 남원시 향교동에서 출생하였다. 평생을 남원에 거주하며 1996년 타계하기까지 남원의 판소리를 이끌었던 명창이다. 그는 김정문, 송만갑, 유성준 등에게서 동편소리를 학습하였으며, 임방울, 조학진에게서 서편소리도 학습하였다. 그러나 약간 쉰 듯한 수리성에 통성으로 질러내는 그의 성음은 동편판소리의 진수이며, 특히 기교를 부리지 않고 질러내는 소리는 송만갑 명창과 가장 닮았다고 평가된다. 강도근 명창은 1972년 남원국악원의 판소리 강사로 부임한 이래, 남원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여 전인삼, 안숙선, 강정숙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198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평생 제자를 양성하다 1996년 5월 13일 78세를 일기로 남원시 향교동에서 타계하였다. 강도근 명창의 판소리는 ‘흥보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승되었으나 다섯 바탕을 모두 보유하였던 창자이다. 강도근의 판소리 중 그의 생전에 <흥보가>(3CD)와 <수궁가>(3LP) 2바탕만 음반으로 남아있고, 그 외의 소리는 안타깝게도 전바탕 음원이 남아 있지 않다. 특히 강도근의 ‘춘향가’는 희귀음원으로, 1993년 삼성전자에서 LD로 제작된 <혼의 소리-동편제의 거장 강도근>에 일부 대목이 포함되었을 뿐이다. 이 음반에는 정회천 교수와 대담하는 도중에 강도근 명창이 <단가 백발가>와 춘향가 중 <적성가>, 수궁가 중 <세상경치>,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를 부른다. 북도 정회천 교수가 맡았다. 대담은 강도근 명창의 일생을 조명하는데 주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해설서에는 강도근 명창과 관련된 글(정회천. 신은주 전북대 교수)과 판소리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정말 귀중한 자료이다. 이런 자료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정회천 교수, 개인이 소장한 30년이 넘은 음원이지만 음질도 깨끗하며 강도근 명창의 성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음반은 비매품으로 출반되었습니다. 전북대학교에 연락하여 음반을 얻었습니다. 2021년 12월 19일 아침 8시 조금 넘어 국악FM방송 ‘정창관의 음반에 담긴 소리향기’ 코너에서 무료 나눔 행사를 진행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청취바랍니다.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TOPCD-189&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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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정창관의 신보유람 36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가야금병창이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국악의 한 장르이다. 단가나 판소리에서의 한 대목 또는 민요를 가야금 반주와 함께 노래하는데, 성악과 기악이 잘 어우러진 음악이다. 가야금병창은 조선 말기부터 시작하였고, 1968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가야금병창의 달인, 박귀희 명창은 가야금병창을 일러 "가야금은 가야금대로, 노래는 노래대로 잘해야 되기 때문에 어려운 음악”이라고 하였다. 가야금과 소리의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단가를 부르면 담담하고 정감어린 화기가 감돌고, 민요를 부르면 흥겨운 춤사위가 깃 들며, 판소리 대목을 부르면 소리의 다른 멋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였다. 가야금병창의 다른 명인, 장월중선(1925~1998)은 가야금병창에서 자신만의 예술성을 재창조하여 독창적인 한 유파를 완성하였다. 명인은 1993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 음반은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의 전수조교인 월은 임종복 선생이 출반한 음반으로 2019년 1집 ‘월은 임종복 가야금병창 심청’에 이은 2번째 음반이다. 이 음반에는 단가 ‘백발가’, ‘백구가’,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화상’, 춘향가 중 ‘사랑가’, ‘정자노래’, 심청가 중 ‘조객들게’, ‘날이차차’, ‘범피중류’, ‘화초타령’, ‘천지신명’ 등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전승곡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장구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수석단원인 정준호 고수가 잡았다. 임종복 연주자는 1990년부터 장월중선 명인을 사사하여 1999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었다. 현재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20년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가사집’(민속원 출간)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 포항국악원 원장으로 지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이다. 스승인 장월중선 명인은 "나는 나의 예술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전하고 들려주어, 말없이 티 없이 살면서. 물욕과 탐욕 없이 바람같이 물같이 살다가 가리라”라고 설파했다. 연주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올곧이 계승하면서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의 보존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야금병창 음반은 1년에 1, 2장 출반되는 귀한 음반으로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관련 음반 : http://www.gugakcd.kr/music_detail.asp?cd_num=WMED-117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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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으로 만나는 국악의 어머니 박귀희 명인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은 오는 24일 오후 4시부터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전북 전주시)에서 2021 국립무형유산원 토요상설공연 「명인오마주_박귀희(1321~1993)」를 진행한다. 국립무형유산원의「명인오마주」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고(作故) 명인(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삶을 회고하는 공연이다. 명인에게 직접 전수를 받은 제자들이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헌정 공연과 더불어, 명인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예술세계의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다. 이달 개최되는 「명인오마주」 공연은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였던 고(故) 박귀희 명인을 회고하는 무대로 마련되었다. 박귀희 명인은 보유자로 인정받은 가야금산조 및 병창뿐만 아니라 판소리, 창극, 국극, 민요, 전통춤에 두루 능하였으며, 국악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하여 ‘국악의 어머니’로 여겨진다. 이번 공연으로 박귀희 명인이 살아왔던 다양한 모습의 흔적들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공연 프로그램은 박귀희 명인의 주요 활동들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판소리 춘향가 中 <갈까부다>,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 및 단가 <백발가>, ▲여성국극 <샛별왕자와 콩쥐>, ▲박귀희 작곡 가야금 병창 신민요 <샛노란 저고리, 꽃타령, 봄노래>, ▲사물놀이, ▲<몽금포 타령>과 <국악의 노래> 등으로 구성했다. 또한 제자들의 인터뷰와 진행자들의 명인관련 일화 소개로, 박귀희 명인의 생전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국악방송 라디오 ‘온고을 상사디야’ 방송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일은 5월 8일로,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국악의 어머니’ 박귀희 명인의 열정과 헌신의 뜻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별 운영수칙을 준수하여 객석 제한 운영이 이루어진다. 관람객은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손 소독, 발열 체크, 1m 이상 거리두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특히 공연장 출입부터 공연 후 공연장을 나갈 때까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여야 하며, 마스크 미착용 시에는 공연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공연은 사전 예약으로 운영되며, 공연 10일 전부터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과 전화(☎063-280-1500, 1501)로 선착순 예약할 수 있다. 현장 관람과 동시에 네이버TV(https://tv.naver.com/nihc)에서 실시간으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전석 무료이며, 공연과 관련된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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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박녹주의 예술과 비운의 사랑박녹주의 本名은 命伊, 雅號는 春眉, 藝名은 錄珠이다. 흔히 판소리하면 호남을 떠올리게 된다. 판소리가 거기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시대에는 그 사정이 달랐다. 1920년대부터 4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남은 그야말로 판소리의 고장이었다. 박녹주는 영남 출신의 선배 김추월(金秋月:1896∼1933), 김녹주(金綠珠:1897∼1932), 이화중선(李花中仙:1898∼1943), 김초향(金楚香:1900∼1983), 권금주(權錦珠:1903∼1971) 그리고 후배였던 이소향(李素 香:1905∼1989), 신금홍(申錦紅:1906∼1942), 신숙(愼淑:1916∼1982), 오비취(吳 翡翠:1918∼1982), 임소향(林素香), 박귀희(朴貴嬉:1921∼1993), 박초향(朴楚香:1 923∼1964) 등과 함께 달구벌을 판소리 고장으로 만든 주역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박녹주의 은퇴공연이 1969년 10월 15일, 명동 국립극장에서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이날 무대에서 박녹주는 "여러분들을 이 자리서 보고 언제 다시 뵐지 이제 기약이 없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무대생활은 마지막입니다. 소리가 잘못되더라도 허물없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략한 인사말과 함께 단가 <백발가>와 흥보가 중 <박타령>을 불렀다. 박녹주는 울먹이며 간신히 <백발가>를 마쳤다. 객석도 눈물바다가 되었다. 이 은퇴 공연은 부산, 대구, 대전으로 이어졌다. 박녹주는 1905년 경북 선산군 고아면 관심리 437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박중근, 모친은 권순이이며 박녹주 밑으로 남동생 태술, 만호, 만술이 있었다. 박록주의 어릴 적 이름은 모친의 이자를 딴 命伊였다. 박녹주의 부친은 한량으로 집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노름과 술로 세월을 보냈고, 그리하여 박녹주는 10살 때부터 모친을 도와 농사짓고 소를 몰며 물레도 돌리며 억세게 자라났다.박녹주는 그녀의 아버지가 박수무당으로 소리선생도 겸했던 터라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접하면서 자랐는데 1916년 그녀가 12세 때, 그녀가 살던 선산에 협률사 공연이 있었다. 협률사는 소리, 춤, 줄타기, 등의 갖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순회 공연단체인데, 박녹주의 부친이 이 공연의 판소리를 보고 크게 감동하여 평소 목소리가 우렁찬 박녹주를 명창으로 길러내 그녀가 벌어들인 돈을 자신의 노름과 술값으로 쓰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부친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박기홍의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 그녀의 부친은 딸에게 명창이 되라며 命伊라는 이름 대신 錄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박녹주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약 20시간 동안 꼬박 소리를 질러가며 박기홍에게 소리를 배웠다. 그러나 소리할 때의 자세가 매우 엄했고 사설은 거의 한문 투로 되어 있어서 외우기가 무척 어려웠다. 음식은 참기름만 먹었고 고된 연습으로 목에선 피가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지옥훈련 같았던 박기홍의 가르침으로 판소리의 기틀을 확고하게 갖춘 그녀는 그때부터 경상도 곳곳에 초청되어 다니며 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나 사례비가 생기는 족족 그의 부친이 술값으로 써버렸다. 그러던 그녀의 나이 14세가 되던 해 그녀는 김창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김창환은 좀처럼 소리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듣고 그저 따라하도록 지시할 뿐이었다. 박녹주는 김창환이 무대에서 부르는 <제비노정기>를 유심히 듣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한 구절씩 익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덕택에 김창환의 <제비노정기>가 지금까지 전승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박녹주의 세 번째 스승인 강창호는 명창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실력이 대단했고, <심청가>에 장기가 있었다. 그녀는 수궁가 중 <고고천변>을 두 달 동안 배웠다. 강창호에게 소리를 배운 뒤 그녀는 다시 부친의 손에 끌려 대구로 가서 억지로 기생 수업을 받게 된다. 그녀의 부친은 박녹주를 당시 달성권번의 행수기생이던 鸚鵡에게 3년동안 양딸로 맡기는 대신 2백원을 받았고 박녹주는 행수기생의 소유가 되었다. 이 때 그녀의 나이 겨우 14세였다. 앵무는 너그러운 품격의 소유자였고, 재주가 뛰어난 박녹주를 아꼈다. 박녹주는 앵무를 통해 기생수업을 받으면서 춤, 시조, 소리 등을 연습했으며 예의바른 행동거지를 배워나갔다. 그러던 중 그녀 나이 15세 때 李某라는 한량이 박녹주의 딱한 처지를 듣고 2백원의 빚을 대신 갚아 주는 일이 생기게 되어 자유의 몸이 된다.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박녹주였지만 그녀는 또다시 아버지의 손에 끌려 대구로 갔다. 역시 기생수업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 때 그녀는 김점룡, 임준옥, 조진영에게 남도민요 <육자백이>와 <화초 사거리>를 배우게 된다. 당시 그녀는 김초향 다음 가는 소녀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하룻밤 초청되어 가면 10원을 받았다고 한다. 쌀 한 가마니가 50전 할 때의 일이니 그 명성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무렵 충청도의 갑부 변씨가 그녀에게 화초머리를 얹어주고 세간을 사주었다.1922년, 박녹주는 서울로 가서 송만갑에게 단가 <진국명산>과 춘향가 중 <사랑가>부터 <십장가>까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하여 1923년 그녀는 우미관에서 열린 명창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부터 눈부신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전성기를 보내던 1928년 봄 그녀는 조선 극장에서 열린 8도 명창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공연이 끝난 후 두 사람이 그녀를 찾아가는 데 한 명은 전 부통령 김성수의 부친 김경중 영감이었고 다른 한 명은 김유정이었다.김유정의 박녹주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은 그녀가 평생 사랑의 고달픈 행로를 걸어야 했던 전주곡의 시작과도 같았다. 원래 김유정의 집안은 천석지기의 지주였고,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었지만 서울에도 백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러나,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로 집안을 관리하던 큰형의 방탕한 생활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어린나이에 부모 모두를 잃고 외롭게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늘 어머니 사진을 품고 다니며 연상의 여성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을 품게 되었는데 그것이 비극의 시초였다.박녹주에게 첫눈에 반한 유정은 그날 이후 심한 가슴앓이를 하게 되었다. 유정을 매일 밤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연모의 마음을 글로 옮겨 보냈다. 편지를 받고 무척이나 당황했던 녹주는 편지를 다시 하숙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이번엔 레코드판에서 뜯어낸 자신의 사진 밑에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옵소서’ 라고 적힌 편지가 전해져 왔다. 하루가 멀다 오는 편지를 보며 근심하게 된 녹주는 행랑어멈을 시켜 유정을 오게 한 뒤 학생은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지 딴 생각을 하면 아니 된다하고 자신은 기생의 신분임을 내세워 조용히 타일러 보았지만 이미 유정은 사랑에 눈이 멀어 있었다. 편지를 아무리 보내도 답장이 없자 유정은 녹주의 집을 찾아가 대성통곡을 하게 되고, 이를 보다 못한 녹주의 동생 태술이 유정을 달래어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날로 태술과 친해진 유정은 친구 태술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녹주의 집을 찾아갔고, 태술을 통해 편지를 직접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녹주의 마음은 요지부동으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박과 공갈 등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음은 박녹주가 「한국일보」에 38회 연재(1974. 1. 5~ 2. 28)된 「나의 이력서」에 고백한 내용이다. 우리는 그 자료를 통해 유정이 박녹주에게 한 말의 내용과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살펴 볼 수 있게 되고 유정의 슬픈 집착이 잘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척 하는 거요. 보료 위에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하듯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김유정이 나한테 죽이겠다고 협박편지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김유정이 나를 부른 칭호도 금새 달라져 갔다. 처음에 "선생”이라고 하더니 "당신”이라고 변했고 나중에는 "너”라고 자기 부인을 칭하듯이 불렀다. 하루는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검은 그림자가 인력거를 향해 돌진해왔다. 직감적으로 김유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력거꾼에게 정거하지 말고 빨리 앞으로 달려가라고 소리쳤다. 김유정은 번쩍이는 뭔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칼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오싹해졌다. 인력거꾼은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갔으나 김유정이 더 빨랐다. 그는 인력거채를 움켜잡고 나에게 소리쳤다. "녹주, 오늘 밤은 너를 죽이지 않으마. 안심하고 내려라.” 그가 들고 있던 것은 하얀 몽둥이였다. 그는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대더니 불뿜는듯한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물었다. "너는 혹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를 피하는 거지?” 나로서는 너무나 의외의 질문이었다. 잘못 대답하면 내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천한 여자가 될 것만 같았다....."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이 정도의 협박편지가 들어온 것은 그해 즉 1928년 겨울쯤이다.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를 않았다. 만일 그 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나는 몸이 오싹해졌다. 편지는 잉크로 쓴 게 아니라 혈서였다.이렇듯 유정의 감정은 병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박녹주는 직업상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았고, 그로 인해 그녀는 일상은 활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정은 늘 어디론가 가서 소리를 하는 그녀를 문 밖에서 기다리며 나올 시간만 기다렸지만 끝내 나오지 않으면 온갖 상상을 일삼으며 그녀를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었다.박녹주는 유정이 구애하는 동안 매년 그를 피해 피서를 가는데 1928년에 한 달, 그리고 1929년에는 두 달동안 원산에 있는 삼방 저수지에 머물며 창 공부를 한다. 그녀가 종적을 감춘 동안 매일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거리며 초조해하던 유정은 감정이 한층 더 격해진다. 후에는 그의 감정이 연모의 감정인지 혹은 복수의 감정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이 때 그의 음주량은 그의 몸 상태에 비해 과도했으며, 늑막염을 앓고 있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허약한 상태였다. 혈서를 쓰고, 협박을 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등의 행동은 그녀가 그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오히려 역효과만을 낳을 뿐이었다. 박녹주가 자신은 소리하는 사람이므로 학생과 연애할 수 없다고 하자, 유정은 학생과 소리하는 사람이 사랑해서 안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냐고 대들며 사랑이란 국경이 없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미 남의 소실이었던 박녹주는 그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는데, 부친 문제 등으로 인생을 비관해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던 박녹주가 일주일여만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바로 유정이었다. 그는 "당신 장례를 치루려고 기다렸다” 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을 보면, 유정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아주 서툴거나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정은 박녹주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음에 큰 상처를 입어 학교도 그만두고 고향인 춘천 실레마을로 내려간 1930년 여름부터 그가 타계하는 1937년 봄까지 약 7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3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쓰지만 유정의 가슴앓이는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이어져 결국 나이 서른에 눈을 감는다. 이때의 작품 중 「생의 반려」와 「두꺼비」는 그와 박녹주의 관계에 대한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룰 수없는 사랑에 대한 유정의 恨은 그렇게 작품 속으로 용해되고 승화되어 갔던 것이다.김유정과 같은 시기에 알게 되었던 김경중은 박녹주의 소리일생에 지대한 영향과 주게 된다. 김경중은 8도 명창대회에서 박녹주의 모습에 반하여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선사하는 등 아낌없이 그녀에게 베품을 주었다. 그 뒤에도 김경중은 박녹주를 귀애하며 그녀에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당시는 일제의 수탈이 가혹해 먹고사는 것이 힘든 사정이었고, 박녹주는 한량인 아버지에 의해 착취당하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경제력은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생수업을 받고 2백원에 팔려 다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런 와중에 몇 차례의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15세 때는 임준옥과 사랑에 빠졌다가 부친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고, 17세 되던 1921년에 열린 원산 명창대회에서 남백우와 만나 이내 혼인하였으나, 그녀는 첩이었고, 그 결혼생활은 그녀에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수많은 역경을 통해 그녀는 이미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경험했었고, 누구보다 뛰어난 현실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낭만적이고 현실감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김유정과의 사랑을 받아드리기에는 그녀의 굴곡많은 삶이 허락하지 않았을 터이다. 김경중은 1929년에 송만갑의 수제자인 김정문에게 박녹주가 소리를 배우도록 주선해 주어 21일동안 김정문에게 흥보가 중 초입부터 <제비 후리러 나가는 데>까지를 배우게 된다. 이 때 배운 소리 가운데 <박타령>과 <비단 나오는 데>는 흥보가 중에서 박녹주가 가장 즐겨 불렀던 대목이다. 박녹주는 김정문에게 소리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온 1929년 3월, 부친에 대한 원망과 복잡한 가정사를 비관하여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을 기도하게 되는데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다.자살 소동 이후 몸을 회복하게 된 박녹주는 1930년, 다시 김경중의 권유에 따라 김정문에게 <심청가>를 배우기 위해 남원으로 가서 열흘 동안 심청가 전 바탕을 익히게 된다. 김정문은 송만갑이 "제자가 무섭다.”고 할 정도로 극찬한 명창이었다. 김경중의 후원이 없었다면 김정문의 <심청가>의 전승이 끊어질 뻔했는데, 다행이 박녹주를 통해 전승되어 온 것이다. 남백우의 첩으로 사는 데 회의를 느낀 박녹주는 이별을 결심하고 申某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여 함께 살다가 1931년에 김종익과 재혼하게 된다. 김종익은 박녹주와 송만갑을 위해 조선성악연구회의 사무실로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159번지에 있던 9천 5백원짜리 건물을 사주었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양반 등 상류계층이 몰락하게 되자 전통음악인들은 돈 많은 한량과 서민을 상대로 공연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그런 장소에 음악인들을 공급하는 구실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박녹주는 생활을 했고, 송만갑에게 틈틈이 소리를 배웠다. 박녹주는 김여란, 이기권과 함께 정정렬에게 <춘향가>와 <숙영낭자전>을 배웠는데, <숙영낭자전>은 전승이 끊어진 판소리로서 정정렬이 창작해서 불렀고 그것을 박녹주가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유성준에게서 <수궁가>를 익혔다. 1935년,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창극을 춘향전을 공연했는데, 이 때 박녹주가 춘향 역할을 하였다. 공연이 끝난 후 춘향을 직접 보려는 관중으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940년 박녹주의 부친이 타계했다. 박녹주는 한평생 부친을 원망하며 살았으나, 막상 그가 타계하자 며칠 동안 슬피 울었다고 한다. 박녹주에게 있어 예술과 사랑의 길 모두가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까? 훗날 그녀는 아편흡입과 아편소지 매매 등의 죄명으로 공판에 회부되고 철창에서 탄식하는 절망의 날들을 맞기도 했으니 말이다.박녹주는 여류명창이면서도 매우 남성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데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가 투박하고 꿋꿋한 소리제를 구사했던 것은 그가 남자 명창들에게 소리를 배웠던 데 가장 큰 이유가 있겠고, 또 그가 타고난 성음 자체가 강한 인상을 주며 그의 고난에 찬 인생살이가 그를 강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녹주의 제자인 이옥천은 박녹주의 소리를 가리켜서 "통이 크고 박력이 있으며, 부드럽기 보다는 꿋꿋하며, 맺고 끊음이 무섭다.”고 평했다. 박녹주는 대체로 전바탕 공연보다는 토막소리 위주로 공연을 하였기 때문에 아니리는 극히 짧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멋이 있다. 판소리 명창들의 출신지가 대부분 전라도 지역이라서 전라도 방언으로 아니리를 구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선산에서 태어난 박녹주는 경상도 방언으로 아니리를 구사하기 때문에 매우 특이하다. 남성을 능가할 정도의 통성을 위주로 해서 소리를 끌고 나가며 소리 맺음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고 분명하다. 이런 박녹주소리의 특징이 「?조선 창극사」?에는 모지락스럽게 맺고 끊는다고 적혀 있다. 성음은 엄성이 많이 쓰이고 정대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각 대목마다 상황에 맞게 성음, 장단, 선율에 변화를 주어 이면을 살려내는 기량이 출중하다. 또 서편제의 더늠을 부르더라도 동편제의 특성을 가미해서 소리가 매우 진중하다. 이러한 박녹주의 소리는 별로 힘 안들이고 쉽게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엄청난 공력을 내보인다. 또한 박녹주는 발림이 요란하지 않았다. 발림보다는 성음과 선율에 변화를 주어 목소리만으로 각 대목의 상황을 적절히 묘사해냈던 것이다.1940년대 후반에 박녹주는 국악계가 남자들 편의 위주로 운영되는 것에 불만을 갖고 김소희, 박귀희 등을 이끌며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아니면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판소리계에서 유독 경상도 사투리를 고집한 박 녹주가 남긴 음반은 명물로 꼽히며, 40년대에 김소희.박귀희 등과 함께 결성한 여성국악동호회는 남성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판소리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6. 25 발발 후에는 월북을 강요당하기도 했으며 전쟁통에 한쪽 눈을 실명하여 그 뒤로 검은 안경을 쓰고 다녔다. 6. 25때 그녀는 오태석, 김세준, 박춘홍, 조농옥, 이용배등 30여명과 함께 방위대에 입대하여 군인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다니기도 하였다.이러한 박녹주는 5명창이 타계한 후 여류 국창으로 군림하였고 인간문화재로 소리판을 지켜냈다. 박녹주의 콜럼비아에서 나온 음반이 인기를 끌자 여러 음반회사에서 앞다투어 그녀의 음반을 제작했다. 박녹주는 음반 취입, 무대 공연, 잔칫집 초청 공연 등으로 돈을 벌어 월수입이 무려 5-6백원이나 되어 자가용차를 전세내어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저축하는 성품이 아니어서 돈이 생기면 모두 써버리곤 하여 말년의 곤궁함을 면하기 어려웠다.박녹주는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서 50대 전반기였던 1955년~1960년에 가장 좋은 소리가 나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국가 경제가 극도로 악화되어 대다수의 국민이 음악을 즐길 여유가 없었기에 음반 제작이 활발하지 못했다. 그녀 또한 6. 25 이후부터는 유랑극단 생활을 통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녀는 1960년 초에 급성 폐렴을 얻어 경찰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때 그녀의 유랑생활은 끝이 났다. 그녀는 젊을 때 벌어놓은 돈을 저축해 놓지 않아, 6. 25 이후에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삶을 꾸려나가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1965년 박녹주는 김여란, 김연수, 김소희, 정광수, 박초월과 함께 <춘향가>로 중요 무형 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다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대상이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확대되면서 그녀는 <흥보가>의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69년 10월 15일, 명동 국립극장에서 박녹주의 은퇴공연을 하고도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1970년대에 집에서 판소리보존연구회를 운영했다. 김소희, 한애순, 박귀희, 성우향, 조상현, 박초선, 성창순, 이옥천, 한농선, 박송희, 정성숙, 조순애, 정의진 등이 그녀에게서 소리를 배웠다.1978년 박녹주는 고향인 선산에서 공연을 했다. 이 무대에서 그녀는 <백발가>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소리를 하면 할수록 폐가 붓는 지경으로 몸상태가 악화되어 있었다. 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74세의 병든 몸을 이끌고 고별무대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생각하면 징그럽도록 사연도 많고 한도 많았던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단가 <백발가>를 목놓아 부르자 객석은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그러던 1979년 5월26일 오후 1시, 시대의 명창 박녹주는 셋방을 전전하다가 면목동의 단칸방에서 혈육한 점 없이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그에게는 오직 양아들로 맞아들인 조상현이 있을 뿐이었다.구미시 선산읍 노상리 마을회관 앞 놀이터. 화강석 장구와 북을 깔고 앉은 ‘인간문화재 제5호 박녹주(朴綠珠:1905∼79)여사 기념비’가 외롭게 서 있다. 1981년 세워진 이 비석의 주인공 박녹주는 젊어서는 대구 달성권번, 서울 한남권번의 名妓로 이름을 날렸고, 늙어서는 동편제의 거목으로 판소리<춘향가>, <흥보가> 분야 인간문화재로 예우를 받았지만, 삶 자체는 판소리 서편제처럼 너무나도 서글펐다. 조상현, 박송희, 신영희 등 그의 뜻을 기리려는 후학 들은 매년 그녀가 타계한 5월26일, 비석 앞에서 판소리 한마당으로 기제사를 올린다. 지금은 구미문화연구회 등이 주축이 되어 추모사업회가 구성되었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전국국악대회도 2001년부터 매년 10월 열리고 있다.(출처:한국컨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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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한국을 사로잡은 명창 박녹주소설가 김유정이 연모한 여인 단아한 체격으로 명품 동편제를 뽑아내던 박녹주朴綠珠(1905.2.15~1979.5. 26)는 「봄봄」, 「동백꽃」을 쓴 소설가 김유정이 꿈에도 잊지 못하며 석달 간 연서를 보낸 주인공이다. 연희전문에 다니던 4살 연하의 강원도 실레마을 출신 엘리트 소설가의 연모가 이미 소리명창의 영예를 얻고 있던 당대 스타 박녹주의 삶에 파고들지는 못했다. 경북 선산(현재 구미) 고아에서 1905년 2월 15일(음력 1월 25일)에 태어난 박 녹주의 본명은 명이命伊, 호는 춘미春眉이고, 녹주는 예명이다. 박녹주는 호 적상 박재보朴在普와 박순이의 자녀로 태어난 걸로 기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박중근과 권순이의 3녀로 태어났다. 다소 강한 억척같은 성격에 쟁쟁한 목소리를 내던 박녹주는 12살 되던 해(1916년)에 나라 제일의 명창으로 만들고 싶다는 아버지 손에 끌려 선산 도리사 사하촌에 머물고 있던 가신歌神 박기홍朴基洪 앞에 섰다. 동편제 「적벽가」에 능한 박기홍은 박녹주에게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소리를 배우도록 했다. 소리하는 자세부터 엄하게 한 박기홍은 무릎을 세우고, 허리와 목을 꼿꼿이 세운 자세로 쉼없이 소리를 하 라고 가르쳤다. 점심 때를 제하고는 새벽녘 개밥바라기별이 뜰 때까지 「춘 향가」를 가르쳤다. 박녹주는 불과 두 달만에 「춘향가」전 바탕과 「심청 가」일부를 익혔다. 이때 예명을 녹주로 지었다. 어린 박녹주는 권력으로 위협해도 목숨걸고 이도령과의 순수한 사랑을 이뤄내는 「춘향가」중 옥중가와 몽중가가 맘에 들었다. 천지 삼켜 사랑나고, 사람생겨 글내일제 뜻정자 이별별자를 어이허여 내였든고. 뜻정자를 내였거 든 이별별자를 내지를 말거나 이 두 글자 내던 사람은 날로두고 지였던가. 도 련님이 떠나실 적에 지어주고 가신 가사 한창허니 가성열은 동창의 슬픔이요, 수다에 몽불성은 정부사의 설움이라... 어려운 가사를 외다가 잘못 외면 박기홍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회초리 로 때렸다. 목에서는 피가 났다. 도리사 부근에 머물던 박기홍은 「춘향가」 외에 「심청가」를 조금 더 가르친 뒤 선산을 떠나갔다. 소리를 다 배우기도 전에 박기홍 명창은 떠나고, 박녹주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녹주가 소리를 한다는 소문이 벌써 꽤 났다. 선산은 물론 김천, 왜관, 상주 등지 에서도 초청이 왔다. 이때 벌써 과연 소리는 녹주야 라는 평가를 들었다. 앳된 박녹주가 우렁찬 소리로 「춘향가」 일절을 부르면, 좌중이 다 놀랐다. 14살 되던 해(1918년)에는 노대가 김창환金昌煥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흥보가」중 제비노정기 를 전수받았다. 제비노정기는 박녹주가 가장 애창하던 대목이다. 어린 소녀가 설움을 받아가며 김창환의 소리를 전수받은 덕에 대부분 소리꾼들이 박녹주의 제비노정기를 이어받아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박녹주의 세 번째 선생은 대구 강창호였다. 앞산 절에 머물던 강창호는 예순이 다 된 노인이었으나 소리가 쩡쩡했다. 별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리를 퍽 잘하는 편이었다. 강창호에게 박녹주는 초입부터 심청이 인당수에 빠 지는데까지, 「수궁가」중 고고천변을 두 달동안 배웠다. 강창호에게「심청가」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권번 에서 기생수업을 받게 했다. 소리를 배우는 것조차 꺼려하던 어머니와는 달리 박녹주의 아버지는 3년간 딸을 맡기고 돈 2백원을 받아갔다. 대구 달성공 원 앞 달성권번이었다. 달성권번에서 행수기생 앵모의 양딸이 되었다. 당시 행수기생 앵모라면 우리나라 한량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수백명의 기생을 거느리고 있었고, 젊었을 때는 미녀 기생으로 명성을 날렸다. 박녹주가 15 살 되던 해에 행수기생 앵모는 환갑을 맞이했는데 이때 서울 한성권번과 조선 권번 기생을 필두로 부산, 동래, 광주, 원산 강경 기생들이 몰려왔다. 1천여명이 넘는 기생들은 대구 방천 옆에 2개의 가설극장을 세우고 앵모 환갑기념공연을 가질 정도였다. 앵모 밑에서 소리 춤 시조를 배우던 박녹주는 단박에 두각을 드러냈다. 앵모는 녹주, 너는 장래 크게 될 거다 면서 격려를 해주었지만 어린 나이에 기생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 지가 받은 돈 2백원을 갚은 박녹주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1919년으로 한 창 기미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1919년 4 월 서울로 갔다가 소득없이 다시 고향 선산으로 내려와서 여름을 고향에서 보내고, 박녹주는 다시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왔다. 아버지 친구집에 머물면서 권번에 드나들었다. 이미 대구에서 김초향 다음가는 소녀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열다섯살 박녹주는 달성권번에서 알려진 김점룡, 음준옥, 조진영 등으로 부터 육자배기를 배웠다. 육자배기는 판소리와 똑같은 소리이나 명창들은 천 박하다고 부르기를 꺼려했다. 조진영에게 배운「화초사거리」는 민요 중에 서도 가장 어려운 것으로 박녹주의 마음에 쏙 들었다. 1920년, 16살이 된 박녹주는 키도 훌쑥 자라 156cm가 되었다. 하룻밤 초청되 어가면 그때 돈 10원을 받던 박녹주는 아직 머리를 얹지 않은 동기童妓였다. 당시 풍습으로는 기생이라면 화초머리를 얹어야 더 인기를 끌었다. 화초머리 란 낭군을 맞지는 않고, 그저 머리만 얹는 풍습이다. 머리를 얹어주는 사람은 명사이거나 부자양반이었다. 서로 바라는 것 없이 동기가 커서 유명해지면 그때 가서 보답을 하는 식이었다. 박녹주에게 화초머리를 얹은 사람은 변씨라는 충청도 부자였다. 박녹주가 16살 되던 가을에 댕기를 가져간 변씨는 그때 풍습대로 세간 등 모든 것을 그저 사주었다. 변덕스럽던 박녹주의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초머리를 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변씨로부터 얻은 세간을 모두 팔아서 딸을 고향으로 데려갔다. 설을 쇠고, 다시 대구로 딸을 데리고 나간 박녹주의 아버지는 이번에는 강릉 에서 대구 부자 박참봉의 돈으로 권번을 차리자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원산까지 걸어가며 마을마다 명창대회를 열어 많은 돈을 벌었다. 국창이 될 사람 국창이 될 사람 원산 명창대회는 박녹주의 창에 반한 앙콜소리로 떠나갈 듯 했다. 명창대회 라고 해서 지금의 명창 대회같은 공인받은 것은 아니고, 조금 규모가 큰 감상 회 정도였다. 공연 다음날, 박녹주는 원산 부자인 남백우로부터 초청을 받고 소리를 했다. 여기에서 22살 연상 남백우를 만났다. 보성전문을 졸업한 남백 우는 한창 때라 풍채도 좋고 인자한 편이었다. 남백우는 반세기를 소리로 물 들일 명창을 대번에 알아봤다. 녹주, 자네는 우리나라 국창이 될 사람이야. 내가 소홀히 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을 원하는가? 고 물었다. 박녹주는 늘 고생하던 어머니가 이곳 선산에 살지 말고, 멀리 이사가서 사는 게 내 소원이야 하던 말을 떠올렸다. 어머니를 원산에 모셔다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 박녹주의 바램대로 남백우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원산 중리의 큰 기와집을 세 얻어주고 이사비용을 댔다. 남백우는 박녹주의 첫 남편이다. 18살 되던 1922년에는 서울에서 송만갑宋萬甲(1865~1939)을 만났다. 송만갑은 우미관優美館 명창대회에 출연하고 있었다. 송만갑은 단가 「진국명산」 을 불렀다. 앞이마와 뒷머리가 툭 튀어나와 재주가 넘쳐 흐르는 송만갑은 천생 예술가였다. 몸집이 작아서 성량은 크지 않았으나 높고 강한 철성鐵聲이어서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였다. 당시 한성권번에 선생으로 다니던 송만갑을 따라 한성권번에 가서 1923년부터 「진국명산」과 「춘향가」를 배웠다. 헌종 때 가왕으로 불렸던 국창 송흥록이 큰할아버지인 송만갑은 이미 10살에 명창의 칭호를 들었다. 박녹주는 송만갑으로부터 「춘향가」 중 사랑가로부터 십장가까지 배웠다. 24살 되던 1928년에는 조선극장에서 팔도명창대회가 열렸다. 지금 종로세무서 위편에 있던 조선극장은 단성사 우미관과 함께 3대 극장으로 손꼽혔다. 전국 명창들이 모두 출연하다시피한 이 공연에서 재창 삼창 앙콜을 받은 박녹주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다. 한 사람은 고려대 설립자이자 전 부통령인 인촌 김성수의 부친 김경중, 또 한 사람은 당시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대학생 김유정金裕貞이었다. 김경중은 일국의 명창이 관철동 전셋집이 웬말이냐며 수운동에 3천원 짜리 집을 사주었다. 뿐만 아니라 박녹주가 1929년 송만갑의 수제자인 김정문 金正文에게 소리를 배우도록 주선해주고, 매달 1백원이나 되는 비용도 대주었다. 소리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었다. 박녹주가 김정문으로부터 「흥보가」의 제비 후리러 나가는데까지 배웠기에 오늘날까지 동편제 「흥보가」가 온전히 전승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박타령과 비단 나오는데 는 박녹주가 즐겨 부른 대목이고, 심청가 전 바탕도 김정문으로부터 전수받았다. 박녹주의 홍보가는 김소희를 통해 소리판의 맥을 잇고 있다. 유성준劉成俊으로부터는 「수궁가」일부를 배웠다. 「봄봄」, 「동백꽃」 의 작가 김유정金裕貞은 뛰어난 예술성의 박녹주에게서 어릴 때 여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만 짝사랑에 빠져버렸다. 나는 조선극장서 선생이 소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기를 끄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나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나는 22살의 연전 학생이오.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오. 그로부터 김유정은 석달 동안 매일 편지를 보냈다. 정말 밤에 본 당신은 아름답더이다. , 나는 그 길가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오. 연상의 남편 있는 명창 박녹주를 사랑하는 김유 정의 연모는 때로는 협박으로 때로는 혈서로 때로는 납치극으로 변했다. 한번 만이라도 사랑을 받아달라고 애원하던 김유정은 피묻은 편지도 보냈다. 애끓는 마음을 혈서에 담아보냈지만, 박녹주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김유정의 사랑고백은 온 천지로 퍼져나가 원산의 남편 남백우나 김경중까지 다 알게 되었다. 때로는 박녹주에게 너무 매정하다는 비난이 되돌아오기도 했다. 1929년 김유정은 「소낙비」란 소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 로 중앙일보에 동시에 당선됐다. 김유정이 박녹주에게 보낸 연애편지들은 지 금도 강원도 실레마을에 있는 김유정문학관의 유품으로 남아있다. 결국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제어하기 힘든 일방적인 사랑으로 박녹주 바보가 되어버린 김유정은 1937년 늑막염에 폐결핵이 더해져서 유명을 달리했다. 소설가로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나 30살, 젊음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타계한 것이다. 과한 연모가 엘리트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김유정의 생명까지 앗아간 것일까? 너무 짧고 그래서 더 애틋한 김유정의 삶은 서른 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때 박녹주는 33살이었다. 김유정은 바로 네가 죽였지!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박녹주가 연희전문 학생 신분이던 젊은 소설가의 열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김유정의 죽음을 그렇게 안타까워했다. 12살부터 소리길을 닦아온 박녹주는 20대에 벌써 대명창들과 교제하였고, 여류명창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1928년에는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심청가」를 취입했고, 연이어 빅터 태평양 레코드에서 판소리 네 바탕을 모두 출반하여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렸다. 1930년에는 관훈동 '성악연구회'에 자주 나가며 평탄하게 지나갔다. 이 성악연구회란 당시 우리나라의 명창인 송 만갑,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이 주동이 된 국악인 모임이었다. 1931년 봄, 박녹주는 두 번째 남편 우석友石 김종익金鐘翊을 만났다. 김종익은 박녹주와 송만 갑을 위해 익선동에 성악연구회 사무실로 9천 5백원짜리 집을 사줬다. 그럴듯한 집을 가진 성악연구회는 정식 총회를 갖고 이동백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마음이 넓은 둘째 남편 김종익은 늘 너의 몸은 네 것이지만 소리는 세상 사람들 것이니 그들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방송에 나가는 것, 레코드 취입하는 것, 성악연구회에서 창극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하였다. 소리는 세상사람들에게 돌려줘야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 결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박녹주는 1935년 동양극 장에서 처음 공연을 가진 「춘향가」(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정정렬 연출)에 서 춘향역을 맡았다. 인물이 곱거나 연극을 잘해서가 아니라 소리 하나만으로 춘향역을 맡은 것이다. 그해 봄 동양극장을 1주일간 인파로 가득 메운 「춘향 가」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긴 창극으로 명사 치고 이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국창은 모두 출연했던 이 공연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3시, 오후 7 시에서 자정까지 두 차례 열렸다. 서로 떠밀고 들어오느라 유리창이 깨지고, 출입문이 부서지는 대소동 가운데도 「춘향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 도령 역은 정남희(6·25때 납북), 방자 역은 오태석, 변사또 역은 5대 명창으로 손꼽히는 김창룡, 곡성 원님 역은 송만갑, 임실 현감 역은 정정렬이 했다. 당대 60대 대명창이 조연을 맡을 정도였으니 「춘향가」는 공전의 히트를 쳤 다. 명창들은 요샛말로 애드립도 잘했다. 대사에 없는 말로 관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한 예로 잔치 도중 운봉역을 맡은 이동백이 송만갑을 보고 여보게 곡성영감. 당신은 어디가서 못 크고 그렇게 작은가 하곤 농을 거는 게 대표적이다. 원래 키가 작은 송만갑을 놀린 것이다. 그러면 송만갑은 운 봉영감은 뭘 먹고 그리 컸소. 좀 알려주소 하고 응수를 했다. 박녹주는 성악 연구회의 창극에서 늘 주연을 했는데 34세부터 춘향역을 내놓았다. 그러나 몸 이 작고 제격이라고 해서 심청역은 39세까지 했다. 성악연구회에서의 창극생 활은 39세까지 계속됐다. 1938년 가을에는 「숙영낭자전」을 동양극장서 초연初演했다. 전통적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같이 깊고 해학이 짙은 맛은 없었지만 젊은 남녀의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박녹주는 숙영낭 자역도 맡았다. 「숙영낭자전」은 현진이란 백白진사의 외동아들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녀 숙영낭 자와 사랑 끝에 결혼한다는 줄거리이다. 숙영낭자역을 맡은 박녹 주는 극 중 남편 백현진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임소향林小香에게 절을 해야했다. 임소향은 박녹주보다 열 살 넘게 어렸다. 큰언니로 모시던 박녹주의 절을 받는 게 미안해서 임소향은 어쩔줄 몰라했 다. 그러면 박녹주는 작은 소리로 때려 죽일 년, 절 받아라 하면서 절을 했다고 전한다. 대부분 창극에서 주역을 했으나 37세가 된 1941년에 공연한 「수궁가水宮歌」에서는 단역인 자라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런데 창극중에서는 이 「수궁가」가 가장 히트를 했다. 그러나 소도구가 하도 많아 지방공연을 갖지 못했다. 「수궁가」의 주역인 자라 는 임방울이, 토끼는 김연수가 맡았고 수궁용왕은 조상선이 분했다. 천생의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임방울은 허풍좋고 우직한 자라역을 잘도 해냈는데, 사실 임방울과 어머니역을 맡은 박녹주는 고생을 엄청했다. 딱딱한 자라옷을 등에 쓰고 엉금엉금 기어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공연한 때가 여름이면 땀이 온 몸을 적셨다. 둘째 남편인 김종익이 1941년 봄, 이질로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타계하기 전, 박녹주는 이화중선李花中仙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김종익은 이달에 벌면 다음달에 저축을 하라고 했으나 한귀로 흘렸다. 만년에 생활고를 겪으면서 박녹주는 남편 김종익의 충고를 고깝게 여기고 이재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해방을 맞고 처음 한 일이 여성국악동호회 결성이다. 그때 까지 국극사 조선 창극단 등 남자들이 이끄는 예술단체가 있었지만 모든게 남성 위주였다. 여성들은 푸대접을 받았다. 1945년 봄 박귀희, 김소희, 임춘앵, 정유색, 임유앵, 김경희 등 30여 명의 여성으로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하고, 상무이사에 취임했다. 본격적인 여성국 악운동의 시작을 예고한 것이다. 한국전쟁시 정남희 등이 월북을 강요했으나 잘 모면했으며 명창 30여명과 함께 국민방위군 정훈공작대에 편입되어 1952년까지 군을 돌며 「열녀화」를 공연하였다. 1952년 눈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대구에서 국극사國劇社를 결성하였다. 1960년부터 박귀희에게 「흥보가」를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1964년 12 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춘향가」)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박귀희는 송만갑, 김창환, 이동백, 정정렬 김창룡 등 5명창이 타계한 후 여류 국창으로 군림하다 남자 명창들의 맥이 거의 끊어져버린 인간문화재 시대에 김여란과 함께 쇠퇴하는 소리판을 굳건히 지켜낸 국악계의 어머니이다. 대구의 국악인 박기환씨는 박녹주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국악인이었다며 국립국악원을 만들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려주었다. 1971년 판소리보존연구회를 창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활약 하였고, 그의 소리는 조상현,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등이 이어받았다. 늑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여성국악인으로서 다소 거칠다 싶은 목소리를 지녀 단단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 명창 박녹주는 대구·경북보다 중앙무대에서 더 큰 활동을 펼쳤다. 타계 일년전인 1978년 고향 선산에서 열린 제자들과 마지막 고별공연에서 백발가를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박녹주는 동편제 창법의 국보적 존재로「흥보가」명창이 자 판소리계에 우먼파워를 심은 인간 문화재이다. 평생을 소리로 보낸 박녹주에게 이 이상의 영광은 없을 것이다. 박녹주에게 소리를 배운 사람은 상당히 많다. 박녹주는 박귀희에게 송만갑제가 그대로 살아 있는 「흥보가」를, 정의진에게 박녹주제 「흥보가」를 전수했다. 판소리 기본인 다섯마당 말고도 정정렬이 유일하게 부른 「숙영낭자전」 을 배웠다. 「숙영낭자전」은 김여란과 이기권이 같이 배웠으나 이기권은 일찍 죽고 김여란은 많이 잊어버려 유일하게 박녹주만 알던 것을 박초선, 한농선, 조상현, 조순애, 박송 희 등에게 전수했다. 서편제가 호남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동편제는 영남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고 그 중심에 박녹주가 있다. 1979년 5월 26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명창 박녹주 노래비는 경북 구미 노상동에 세워져 있다 [경북여성 인물사] 소리로 한국을 사로잡은 명창 박녹주 (저자:최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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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온나라 국악 경연대회 3월 29일 ~ 4월 25일무제 문서 제33회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 개최 공고 우수한 국악 인재 발굴을 위해 국립국악원에서 개최하는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는 2013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후원으로 시상금 증액, 실질적인 특전 부여를 통해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제33회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에 많은 국악 인재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 일 시 : 2013년 3월 29 ~ 4월 25일 예선 경연 작곡 2013. 3. 29.(금) 14:00(악보심사) 성악·기악 2013. 4. 88.(월) ~10.(수) 10:00~ 본선 경연 2013. 4. 11.(목) ~ 12.(금) 10:00~ 입상자 발표 2013. 4. 12.(금) 경연 종료 후 1시간 이내 대상 경연 2013. 4. 25.(목) 16:00~ 2. 장 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연수관 3. 주 최 : 국립국악원 4. 후 원 : 현대, 동아일보 5. 문 의 : 국립국악원 온 나라 국악 경연대회 담당자 박희정(02-580-3089 / e-mail : jeonsa91@korea.kr) 6. 경연부문 피리 · 대금 · 해금 · 가야금 · 거문고 · 아쟁 · 정가 · 판소리 · 민요(가야금 병창) · 작곡 7.지정곡 예선 : 기악(정악, 민속악 지정곡 2곡), 성악(지정곡 2곡, 단 판소리부문은 5바탕 중 택 2바탕) 본선 : 기악, 성악(지정곡 2곡, 단 판소리 부문은 예선 경연 바탕을 제외한 3바탕 중 택 1바탕) ※대상경연 시 경연 곡목은 본선 지정곡 중 1곡 택일 부문/구분 예 선 본 선 피리 •정 악 관악영산회상 중 중령산 •민속악 대풍류 중 긴염불 •정 악 수룡음(계락) •민속악 짧은 산조(10분이내) 진양(3~4분) - 중모리(2분) - 중중모리(2분) - 자진모리(2분) 대금 •정 악 관악영산회상 중 중령산 •민속악 대풍류 중 긴염불 •정 악 수룡음(계락) •민속악 짧은 산조(10분이내) 진양(3~4분) - 중모리(2분) - 중중모리(2분) - 자진모리(2분) 해금 •정 악 관악영산회상 중 삼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민속악 대풍류 중 긴염불 •정 악 수룡음(평롱) •민속악 짧은 산조(10분이내) 진양(3~4분) - 중모리(2분) - 중중모리(2분) - 자진모리(2분) 가야금 •정 악 현악영산회상 중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민속악 민요 노랫가락, 창부타령 •정 악 다스름, 우조초수대엽 •민속악 짧은 산조(10분이내) 진양(3분) - 중모리(2분) - 중중모리(2분) - 자진모리(2분) - 휘모리(1분) 거문고 •정 악 현악영산회상 중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민속악 흥타령, 육자배기 •정 악 현악영산회상 중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민속악 흥타령, 육자배기 아쟁 •정 악 관악영산회상 중 삼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민속악 흥타령, 육자배기 •정 악 수룡음(평롱) •민속악 짧은 산조(10분이내) 진양(3~4분) - 중모리(2분) - 중중모리(2분) - 자진모리(2분) 정가 •남 창 지름시조(바람아), 황계사(1-4장) •여 창 지름시조(청조야), 춘면곡(1-4장) •남 창 우조초수(동창이), 소용이(불아니) •여 창 우조이수(버들은), 반엽(남하여) 판소리 •흥보가 중 “집터잡이” •수궁가 중 “약성가” •춘향가 중 “십장가” •심청가 중 “주과포혜” •적벽가 중 “새타령” ※5바탕 중 택 2바탕 선택곡 바디 꼭 명시해서 신청서 작성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수궁가 중 “토끼 배가르는 대목” •춘향가 중 “박석치” •심청가 중 “심청 인당수 투신” •적벽가 중 “조자룡 활쏘는 대목” ※ 예선 경연 바탕을 제외한 3바탕 중 택 1바탕 20분 민요 •경기민요 유산가(화란 - 슬피운다까지), “긴아리랑” •서도민요 “영변가”, “산염불, 자진염불” •가야금병창 “명기명창”, “화룡도” •경기민요 “적벽가(전곡)”, 정선아리랑, 이별가 •서도민요 “공명가(전곡)”,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가야금병창 “백발가”, 흥보가 중 (구만리 - 제비노정기) 작문곡 작곡 〈악보심사〉 연주자 10인 이내 국악기 편성의 10분 이내 자유곡(성악곡포함) ※타 경연대회 입상곡 불가 〈연주심사〉 예선에 제출한 악보 실연 참고사항 음고기준 피리, 대금, 해금(정악: 林 → Bb, 산조: C), 가야금, 거문고, 아쟁(정악: 林 → Bb, 산조: Bb ↔ B) 반 주 대상 경연 시에만 대동 작곡부문 악보제출 제출내용: 악보 5부(B4규격), 작품해설서 5부 참가신청서 접수 시 제출 ※악보에 성명표기금지, 접수된 악보는 변경 및 반환 불가 경연복장 예선·본선 시에는 평상 연습복을 착용하며, 대상 경연 시에는 연주복 의상 착용 ※대상 경연 시 희망자에 한하여 국악원 의상 대여 가능 8. 참가자격 2013. 4. 8.(예선일) 현재 만 18세 이상인 자(국적불문) ※ 본 대회 금상 이상의 입상경력이 있는 자와 경연부문의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및 보유자 후보(조교)제외 9. 참가신청 *접수기간 : 2013. 3. 18.(월) ~25.(월) 18:00까지 *접수방법 : 인터넷(www.gugak.go.kr) 접수 접수바로가기 : http://www.gugak.go.kr/enjoyment/contest/gugak/guga_viw.jsp?id=15&page=1&searchGubn=&searchValue= * 작곡부문 악보는 제본없이 B4 규격으로 별도 우편송부 또는 방문 접수 (보내실곳: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온나라 국악경연대회 담당자 앞.) 10. 시상내용 구분 대상자 인원 훈격 상금 대상 최 우 수 자 1명 대통령상 1,000만 원 금상 각 부문 1위 입상자 9명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각 300만 원 은상 각 부문 2위 입상자 10명 현대자동차그룹사장상 각 200만 원 동상 각 부문 3위 입상자 10명 국립국악원장상 각 100만 원 11. 입상자 특전부여 •관악, 현악, 성악분야 중 분야별 최우수자에게는 예술분야 병역 특례자로 추천함 ※병역법 관련 법규 개정 시 변경될 수 있음 •각 부문 금상 수상자에게 뉴욕 • LA 지역 예술강사로 파견(항공료 및 숙식 제공) •동아국악콩쿨 수상자와 함께하는 수상자 공연 마련 •국립국악원 및 지방국악원 국악연주단 단원 채용 시 가점 및 실기전형 면제 - 예비단원 전형: 금상 수상자 1점, 대상 수상자 1.5점 가점 부여 - 연수단원 전형: 실기전형 제1과제 면제 ※채용기준일로부터 3년 이내 수상자로 한정함 •본 대회 수상자에게 우리원 교육사업 실기 강사로 위촉 •본 대회 수상자에게 우리원 기획공연 및 해외공연 등 참여기회 제공 12. 기 타 •참가 신청은 1인 1종목에 한함 •예선 • 본선 경연 시 참가 접수증과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지참 •반주는 예선 • 본선에서는 하지 않고 대상 경연 시만 반주자 대동 ※작곡부문은 연주사례비 지원(본선 및 대상 경연 포함 1회 지원) ※정가, 민요 부문은 희망자에 한해 대상 경연 시 국립국악원 반주자 지원가능 •입상자로서 아래와 같은 결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 입상자격을 취소함 - 본 대회 참가자격에 적합하지 않은 자가 입상한 경우 - 심사위원 제척 사유가 있음에도 이를 신청서에 명기하지 않은 자가 입상한 경우 -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입상한 경우 ※창작부문은 아래와 같은 결격 사유가 발견될 경우도 입상자격을 취소함 - 타 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곡을 중복하여 제출하여 입상한 자 - 타인의 곡을 본인 명의로 접수하여 입상한 자 - 영상물 등급 위원회 표절기준에 적용되어 표절작품으로 입상한 자 영상물 등급 위원회 표절기준 1. 주요 동기가 동일 내지는 흡사한 경우는 표절로 인정함 가. 주요 동기라 함은, - 4/4, 4/2, 6/8, 5/4 박자는 첫 2소절 - 2/4, 2/2, 3/8, 3/4 박자는 첫 4소절 나. 흡사하다 함은, 박자 분할이 동일하고 한 두 음의 음정만 다른 경우를 말함 2. 주요 동기 이외는 1항의 소절 수의 배수를 표절로 인정함 - 4/4, 4/2, 6/8, 5/4 박자는 첫 4소절 - 2/4, 2/2, 3/8, 3/4 박자는 첫 8소절 3. 음형은 동일 내지 흡사하고 박자의 분할 배분만 변경된 것은 표절로 간주함 12. 심사 항목 13. 심사 기준 •점수는 최저 85점, 최고 99점으로 상·하한 점수를 규정 •예선과 본선의 경연곡은 동일해서는 안 됨 •경연시간은 예선 10분(정악, 민속악 각 5분씩), 본선 20분(정악, 민속악 각 10분씩) 이내로 진행 • 경연 도중 악기의 이상 및 경연자의 잘못으로 인하여 경연이 정상으로 완료하지 못할 시에는, 진행된 경연에 대해서만 채점하고, 위와 같은 상황에도 경연을 완료한 경우 정상 채점 • 평균점수는 최고 • 최저점을 제외한 합계점수를 심사위원 수로 나누어 산출하고 ‘직접 스승 및 8촌 이내 심사위원 회피’ 등으로 규정에 적용되는 경연자의 평균점수는 해당 심사위원의 점수를 배제하고 나머지 심사위원 수로 나누어 산출함 14.심사방법 및 심사평 • 심사위원이 5명 이하일 경우에는 최고 • 최저 점수 제외 없이 전체점수에 대한 평균점수제 방식을 적용하고, 6명 이상일 경우에는 최고 • 최저 점수를 제외한 평균점수제 방식을 적용 •심사위원은 구성된 심사항목 및 배점에 맞게 점수를 부여 •본선진출자 선정은 수상 인원에 2배수로 함(단, 실력 미달 등 부득이한 경우 본선 진출자가 적을 수 있음) •경연자별 심사평을 채점표에 간략하게 기록하여야 하고, 부문별 경연시간 내에 채점을 완료하여야 함 •경연이 끝난 후 점수의 재조정은 명확한 실수 외에는 불가능 •작곡부문은 악보심사(예선), 연주심사(본선)로 구분하여 심사 ※심사위원은 경연 당일 심사 시작 후 공개 15.순위결정 채점결과 동점일 경우에는 연소자 순으로 하되 년, 월, 일 순으로 결정 16.심사결과발표 예선 · 본선 심사위원별 점수를 발표하며, 부문별 경연 종료 후 최대한 조속히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고 직접 스승 및 8촌 이내 친인척 심사회피 제도 적용 참가자는 직접 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에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신청해야 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 사유가 있었음이 발견될 시 수상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 상장·상금을 반환해야 한다. 직접 스승의 판단 : 본대회는 다음과 같은 경우 직접 스승으로 판단한다. •현재 학교 또는 학교 외 개인적으로 지도 받고 있는 스승 •최근 2년 이내 학교에서 지도교수로 지도를 받은 사실이 있거나 학교 외 개인적으로 1년이상 지도 받은 사실이 있는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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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병원, 뉴힐콘서트 ‘명창명인열전’ 시즌2 개최한국전통음악 명창명인과 의료와 예술 융합 힐링센터의 만남 10월 15일부터 6회에 걸쳐 매월 뉴호라이즌힐링센터에서 개최 한국전통음악의 명창명인과 의료와 예술의 융합 힐링센터가 만나 전통음악의 진수를 보여 주는 뉴힐하우스콘서트 ‘명창명인열전: 전통의 원형을 찾다’ 시즌 2가 돌아왔다. 한양대학교 명지병원은 오는 10월 15일 오후 7시30분 병원 B관 5층 뉴호라이즌 힐링센터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신영희 명창(판소리)의 뉴힐 하우스콘서트로 ‘명창명인열전’ 시즌 2의 막을 연다. 이 날 신영희 명창의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오는 2019년 5월까지(1, 2월 휴연) 모두 6회에 걸쳐 매월 셋째 주 월요일 저녁 한국의 전통음악계를 대표하는 명창명인 1인 중심의 하우스콘서트가 진행된다. 이번 시즌 2에는 신영희 명창(판소리)을 필두로 원장현류 대금산조 창시자로 한국의집 예술단 음악감독 원장현 명인(대금, 거문고),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서울대 국악과 이지영 교수(가야금),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문재숙 명인(가야금),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이태백 교수(아쟁, 타악), 서울대학교 국악과 정대석 교수(거문고) 등 국악계 거목들이 출연한다. 명창명인열전 시즌 2 대장정의 첫 막을 열게 되는 오는 15일 첫 공연은 우리나라의 대표 판소리 명창인 신영희 명창이 단가 ‘백발가’, 입체창 ‘사랑가’,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 등으로 무대를 꾸민다. 신영희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사)만정 김소희 판소리 선양회 이사장, (사)남도민요보존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화관문화훈장 수훈 및 동리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명창명인열전’ 시즌 1때는 안숙선 명창(판소리), 고 황병기 명인(가야금), 이생강 명인(대금), 김영재 명인(해금, 거문고) 등 한국전통음악의 국보급 인간문화재들과 강은일(해금), 허윤정(거문고), 유경화(철현금), 이용구(대금), 김영길(아쟁) 등 현재 국악계의 스타급 중견 음악가들이 대거 출연, 전통음악의 진수를 보여 준 바 있다. 국악방송이 인터넷 웹TV를 통해 생중계(추후 FM 국악당 편집 방송)되는 것을 비롯,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로 라이브 중계될 예정인 ‘뉴힐 하우스콘서트’에서는 판소리, 산조, 민요, 병창, 시나위 등 민속음악의 진수를 보여주게 된다. 특히 뉴힐하우스콘서트가 열리는 명지병원 ‘뉴호라이즌힐링센터’는 자연음향 조건을 갖춘 최고 수준의 사랑방 분위기 속에서 돗자리와 병풍만을 무대로 사용하여, 전통음악과 명인들의 창작 국악곡을 자연음향으로 연주, 전통 고유의 문화유산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 및 만남을 시도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명창명인의 연주 후에는 2부 좌담 순서로 음악평론가 이소영 교수(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의 진행으로 음악평론가 윤중강과 연주자들의 대담 시간이 이어진다. 명창명인의 음악인생과 연주곡 등을 주제로 한 대화를 통해 국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청중들에게도 언어적 설명을 통해 한국전통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번 공연이 진행될 명지병원 뉴호라이즌힐링센터(New Horizon Healing Center)는 첨단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VIP병동을 포함한 최고급 융복합 의료시설이다. 단순히 ‘치료’로서의 의료서비스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힐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기술적·문화적·서비스적인 면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과 새 지평의 공간이다. 뉴힐하우스콘서트는 관람료는 3만원으로 65세 이상 50%, 24세 이하 및 고양시 거주자 30%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 문의 및 예매 031)810-5608, 02)703-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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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목소리와 오동나무, 명주실 열 두 가닥이 빚어내는 가야금병창 국립부산국악원 일요명인전 <강정숙의 가야금병창>일요일 오후에 만나는 국악의 향기 , 가야금병창 맥을 잇는 강정숙 명인의 무대를 만나보자 □ 국립부산국악원(원장 서인화)은 11월 5일(일) 오후 4시 예지당에서 가야금병창의 명인 강정숙 선생을 모시고 을 펼친다. 명창 박귀희 선생과 서공철류 가야금산조의 맥을 잇고 있는 강정숙 □ 강정숙 명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현재 (사)가야금병창보존회 이사장으로 무대와 교육현장에서 활발한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 서공철에게서 가야금산조를, 박귀희 문하에서 가야금병창을 배웠으며 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부 장원, 신라문화재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정숙’ 명인의 목청과 악기 소리 간의 함께 가듯 어긋나는 긴장과 조화로운 가야금병창의 멋을 에서 만나본다. □ ‘가야금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반주를 얹어 부르는 것으로 판소리에서는 병창 스타일을 ‘석화제’라 부르기도 한다. 원래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산조와 병창의 연주자가 분리되는 추세이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를 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가야금 특유의 선율로 본래의 곡과 다른 독특한 맛이 난다. 강정숙, 강길려 자매와 제자들이 함께하는 무대 □ 공연은 ‘서공철류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단가 중 ‘백발가’, 판소리 수궁가 중 ‘여봐라 주부야’, ‘침향무’, 가야금병창 심청가 중 ‘방아타령’, 신민요 ‘노들강, 초록물, 신사철가’로 구성된다. ‘강정숙’ 명인과 함께 동생 ‘강길려’,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들과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 ‘정화영’의 반주로 화합의 무대를 보여준다. 또한, 정영진(부산광역시 문화재위원)의 사회로 강정숙 명인 삶속에 빛나는 가야금병창 이야기를 들려준다. □ 공연관람은 취학아동이상으로 전석 10,000원이며 국립부산국악원 누리집(http://busan.gugak.go.kr)이나 인터파크에서 온라인예약 및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그리고 24세 이하 청소년 또는 대학 학생증 소지자, 장애인(동반1인), 경로우대자(동반1인), 국가유공자(동반1인), 병역이행명문가(동반1인), 사회취약계층 및 다자녀가정 등은 5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20인 이상 단체관람은 20%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문의)051-8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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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관 명창 대구시 무형문화재 지정대구시는 동부민요를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하면서 전승자인 박수관 명창을 예능 보유자로 지정했다고 3월 10일 밝혔다. 동부민요는 우리나라 서남부의 남도민요, 서북부의 서도민요, 중부의 경기민요와 구별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의 백두대간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요를 일컫는다. 기백이 넘치면서도 민초들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동부민요는 음악적, 문학적, 민속학적 특징을 대체로 잘 간직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백발가, 전쟁가, 영남모노래, 상여소리, 치이야 칭칭나네, 장타령 등이 있다. 박수관 명창은 30대 후반부터 각종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97년엔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민요 학술대회에 논문 ‘한국 부전(不傳)민요 연구’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99년엔 전국민요경창 등 3개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9·11테러 직후 미 링컨센터 초청공연 때는 상여소리를 불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박 명창은 UN(FAO)본부, 미국 케네디 센터 콘서트홀, 링컨 센터, 카네기 메인홀, 청와대 초청공연 및 39회의 개인발표회와 미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국내외에서 700여회 한국동부민요 공연을 이어가며 해외에서 먼저 명성을 알렸다. 이 외에도 미국 뉴욕에서 15년간 세계국악경연대회를 개최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한국경연대회 3회, 국내에서 대한민국동부민요 전국경연대회를 6년 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0년 6월에 동부민요가 델픽세계무형문화재(Delphic Worl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로 지정되는 것과 함께 박수관 명창 자신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는 결실을 거뒀다.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델픽위원회(International Delphic Council)는 수많은 무형문화유산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거나 원형이 변질돼 가는 세계 전통예술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델픽세계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있다. 이로써 박 명창은 국제델픽위원회(IDC)의 규정에 따라 동부민요를 보존하고 전승할 자격과 의무를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인 동부민요를 전승, 발전시키기 위해 박 명창은 대구에 동부민요를 전문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한국동부민요대학을 설립하고 지난 2월 27일 동부민요대학 경주 분교에서 어려운 경쟁을 뚫고 선발된 40명을 대상으로 첫 입학식을 가졌다. 입학식에서 그는 “동부민요대학 설립을 위해 15년 동안 노력해왔는데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며 상기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동부민요대학은 전통 민요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민요 명창 양성학교다. 동부민요를 주축으로 한국 전통민요를 보존·발전시키고 명창들을 양성하는 국악 컨서버토리인 것이다. 이 대학 학생들은 미국의 줄리아드 음대와 커티스 음대생들이 음악 공부만 하는 것처럼 동부민요만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학제는 대학 2년, 대학원 2년 6개월 과정을 중심으로 부설 초, 중,고교 과정도 병행한다. 수업은 매주 토요일 8시간에 걸쳐 진행되고 일반 과정, 전문 과정, 지도자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수업방식은 박수관 명창이 직접 전 학생을 도제식 방식으로 가르치게 된다. 이 대학은 본교와 분교로 운영된다. 본교는 동부민요의 중심인 대구 서구에 터를 잡았고, 분교는 경주시 황용동과 강원도 평창군에 각각 설립됐다. 설립자 박수관 명창은 동부민요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일대의 소리인 만큼 지역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 각 지역에 분교를 따로 건립했다고 밝혔다. 박 명창에게 있어서 동부민요대학 설립은 평생의 숙원 사업이었다. 박 명창이 대학설립에 나선 것은 지난 2001년, 지난 15년간 각고의 노력과 대학 설립에 필요한 재원을 사재로 충당한 끝에 올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동부민요 하면 박수관, 박수관 하면 동부민요로 통할 정도로 동부민요는 박 명창의 ‘삶 그 자체이자’ ‘우주’가 됐다. 박명창은 “소리는 깨우침의 길이요, 깨우침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천형을 받은 자만이 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듯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동부민요대학에서는 총장전액장학금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동부민요의 보존, 전승, 보급 발전이라는 대학 설립 취지를 십분 살리기 위한 대학 측의 배려가 있었다. “동부민요 보존과 보급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그 목적에 부합하는 장학금 제도를 도입해 학생들의 부담도 덜고 자긍심도 높이도록 했습니다.” 박수관 명창은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만국 공통어”라며 “많은 제자를 배출해 사람들에게 동부민요를 들려주면 좀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박 명창은 “함경, 강원, 경상도 지역의 민요인 동부민요는 남한과 북한을 잇는 화합의 음악”이라며 “우리 대학을 이런 중요한 민요를 잘 전승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명문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문의 : 동부민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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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의 '창악집성', 30일 출판기념회. ■ 문학과 소리의 운명적 만남! " 인사동에서 우연히 <수심가> 한 자락을 들었다. 서도소리의 목청은 가을 햇빛과 바람에 산란(散亂)하는 백양나무의 나뭇잎 같은 것이었다. 그 소리에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둔중한 슬픔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신의주가 고향인 선친(先親)의 삶이 그 소리 한 자락에 겹쳐 나의 잠재의식을 일깨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후 전태용의 <창부타령>, 지연화의 <대감타령>, 김옥심의 <아리랑>, 김정연의 <관산융마>,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들으면서 점점 소리는 나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소리가 나에게 다가오자 소리의 가사 즉 사설(辭說)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문학이 나의 업(業)이기에 이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 텍스트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30년 가깝게 내가 한 일이었고, 내가 소리를 접하게 되자 또한 당연히도 텍스트로서의 소리의 사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 서문에서 ■ 국악 가사(사설)를 정확하고 쉽게 풀이한 책 - 국악 사설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21세기 현대적 국악 사설집의 결정판! 21세기의 한국 독자들을 고려하여, 국악 사설을 현대적으로 집대성한 《창악집성》이 출간되었다. 국악 가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정본(定本)을 확정하고 상세한 풀이를 싣고 있는 이 책은 한 마디로, 현대판 국악 사설 백과사전이다. 문학평론가인 이 책의 편저자는 국악 전문인들이 부르는 현행하는 거의 모든 ‘소리'의 사설을 수집하여, 몇 가지 원칙 아래 국악 사설을 총정리하고 주석과 해설을 달았다. 이 책의 집필 원칙은, 첫째, 구전되어 오면서 와음(訛音)이 심해 원래의 가사의 뜻을 상실한 국적불명의 가사를 바로잡았다. 둘째, 전수되는 ‘소리'의 특성상 가락과 음이 중요하므로 가사의 뜻이 조금 달라졌다 해도, 그 의미가 전달되는 경우에는 전문 가창자들의 ‘소리'를 우선시하여 가사를 표기했다. 셋째, 가사의 의미가 어려운 구절이나 단어는 그 풀이를 모두 달았다. 특히 단어 하나의 풀이보다는 노래 전체의 뜻을 이해하기 쉽게 구절풀이와 전체 풀이를 달았다. 넷째, 소리 사설의 출전(出典)과 소리의 영향관계에 대한 맥락을 풀이했다. 우리 소서 사설은 중국 한시나 조선시대의 고시조에서 비롯하는 것이 많으므로 이를 일일이 찾아 출전을 명확히 했다. 다섯째, 국악의 여러 장르적 특성을 명기하면서 하위분류에 해당하는 여러 국악 사설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고자 그 연원을 발생론적으로 추적했다. 여섯째, 판소리를 제외한 현행 가창되는 전문 소리꾼의 모든 사설을 담고자 했고, 이본이 있는 경우에는 가치가 있을 경우 다 수록함을 원칙으로 했다. 일곱째, 구전된 전통 민요의 경우 현행 가사를 수록함을 원칙으로 했다. 이러한 원칙으로 《창악집성》은 집필되었다. 이 책의 집필 목적은, 첫째, 자신이 부르는 소리의 사설 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국악전문인, 혹은 국악 지망생들에게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뜻을 정확히 알려주고자 함이다. 실제 국악현장에서는 정확한 사설의 내용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는 소리의 내용에서 소리꾼이 이탈하는 주원인이 되며, 청중들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결과도 가져온다. 소리꾼이 ‘소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정확히 자기의 ‘노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소리를 듣는 청중에게 가사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국악이 서양 클래식이나 서양 대중음악, 우리 대중음악에 비해 선호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현재의 대중이 국악가사의 뜻을 모르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뜻을 알고 ‘소리'를 들으면, 우리 국악의 해학과 정과 한을 훨씬 가깝게 체득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부르고 있건만, 그 뜻을 모르니 국악에 대한 흥미가 없거나 국악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다. 청중이 가사의 뜻을 정확히 안다면 국악을 훨씬 더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악교육현장에서 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현재의 국악교육에서는 실기와 국악사 같은 과목은 교육되지만 국악 가사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당대의 언어로 당대의 노래를 했던 과거에는 이러한 교육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르지만, 전통언어를 구사하는 국악 소리는 교육을 토해 습득,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국악 사설교육의 자료가 부실한 형편에서 이 책은 교육의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악 사설의 소통을 위하여 지금까지 나온 소리 가사집은 전문 소리꾼을 위한, 즉 공급자 중심의 가사집이 대다수였다. 따라서 국악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그 이유 중 하나로 언어적 소통의 불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국악의 사설이 아주 천천히 변화한 것에 비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口語)는 너무도 빨리, 또 많이 변해버렸다. 18세기에 통용되던 노래를 듣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음악 그 자체가 풍기는 정서엔 어느 정도 감응할 수 있을지언정, 그 이면에 얽힌 민속적 사연까지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창악집성》은 그러한 일반 대중을 고려하여 적절히 현대적인 맞춤법을 반영하고 그 눈높이에 맞추어 자세한 풀이와 해설을 첨부한 것이 특징이다. 모든 사설에는 풀이를 달아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별히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별도의 자세한 해설을 달기도 했다. 아울러 이미 출간된 다른 가사집들에 비해 큰 활자를 배치하고 깔끔한 편집 디자인으로 가독성을 높였고, 가나다순 제목으로 찾을 수 있는 색인도 첨부하였다. 이 책은 국악 전문인뿐만 아니라,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사람이나 국악을 즐기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 5년간의 연구와 노력으로 집필된 국악 사설의 백과사전! 《창악집성》은 가곡, 가사, 시조창, 경‧서도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좌창, 잡가, 단가, 가야금병창, 송서, 불가, 재담소리 등 판소리를 제외한, 현재 가창(歌唱)하는 거의 모든 국악의 사설을 담고 있다. 기존의 가사집은 현장의 사설을 옮기는 것에만 주안점을 두어, 그 문학적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해석이 부정확한 곳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소리의 전수 특성상 처음엔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 모방하기에 잘못된 사설도 따라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결국 틀린 사설이 전승되기에 이른다.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그런 해설과 작품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각 지방의 풍속과 전설, 그리고 방언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원본을 확정하고, 거기에 내재된 올바른 문학적 의미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특히 기존의 책들에서 보이는 소리의 사설(텍스트) 자체의 오류와 해석의 오류를 모두 바로잡았다. 이 책의 분류 체계는 이창배의 《가창대계》를 따르면서 편의상 북한의 소리는 서도소리로 모았으며, 충청도와 제주도 민요는 남도소리로, 경상도와 강원도 민요는 동부소리로 모으고 있다. 또한 <배뱅이굿>이나 <장대장타령>과 같이 서사성이 강한 소리는 재담 소리로 명명(命名)했고, 송서와 불가는 따로 부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분류는 국악 현장의 현실성에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기본적으로 현대적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그것에 어긋나더라도 가급적 현장에서 실제 창을 할 때의 발음이라든가 호흡을 반영하여 가사를 표기하고자 하였다. 이는 이 책이 단지 학술적인 연구서나 자료로서의 가치만 지니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창악집성》은 전문 소리꾼뿐만 아니라, 국악에 관심 있는 일반 대중들까지 참고할 수 있도록 집필된 책으로, 앞으로 우리 국악에 대한 이해의 밑바탕을 이루며 국악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편저_하응백 문학평론가. 경희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교수 역임. 저서에 『김남천 문학연구』, 『문학으로 가는 길』, 『낮은 목소리의 비평』, 『친구야 이제 다리를 건너거라』등이 있고, 편저로는 『황동규 깊이 읽기』, 『한승원의 삶과 문학』,『이옥봉의 몽혼』 등이 있다. 현재 휴먼앤북스 대표이며, 사단법인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이다. ■ 목차 제1부 정악 악 1. 가곡 가) 우조 초수대엽 | 이수대엽 | 중거 | 평거 | 두거 | 삼수대엽 | 소용 | 반엽우롱 나)계면조 초수대엽 | 이수대엽 | 중거 | 평거 | 두거 | 삼수대엽 | 소용 | 언롱 | 평롱 | 계락 | 우락 | 언락 | 편락 | 편수대엽 | 언편 | 태평가 | 장진주 2. 가사 수양산가 | 양양가 | 처사가| 권주가 | 매화가 | 백구사 | 어부사 | 죽지사 | 황계사 | 길군악 | 상사별곡 | 춘면곡 3. 시조 평시조 | 사설시조 | 여창지름시조 | 남창지름시조 | 우조지름 | 사설지름 *작자소개 제2부 서도소리 1. 서도민요 수심가 | 엮음수심가 | 반엮음수심가 | 긴아리 | 자진아리 | 긴난봉가 | 자진난봉가 | 사설난봉가 | 타령난봉가 | 연평도난봉가(나나니타령) | 사리원난봉가 | 개성난봉가(박연폭포) | 숙천난봉가 | 자진배따라기(서도뱃노래) | 더자진배따라기(빠른뱃노래, 자진서도뱃노래) | 봉죽타령 |배치기 | 술비타령 | 몽금포타령 | 산염불 | 자진염불 | 개성산염불 | 느리개타령 | 날찾네 | 풍구타 령 | 야월선유가 | 금드렁타령 | 간장타령 | 해주아리랑 | 함경도애원성 | 안주애원성(물레타령) | 싸름타령 | 금다래타령 | 신고산타령(어랑타령) |궁초댕기 | 양산도 | 관음세기(관음타령) | 호무가(호미가) | 호미타령 | 방아찧기 | 투전풀이(투전불림) | 돈돌라리 | 전갑섬타령 | 굼배타령 2. 서도좌창 초한가 | 공명가 | 사설공명가[제갈량 동남풍 축] | 배따라기 | 영변가 |관동팔경 | 제전 | 향산록 | 초로인생 | 장한몽 | 봉황곡 | 전장가 3. 서도입창 놀량사거리 초목이 | 놀량 | 사거리 | 중거리 | 경발림(경사거리) 4. 서도시창 관산융마 5. 서도재담소리 배뱅이굿 | 개(가이)타령 | 맹인덕담경 | 파경 제3부 경기소리 1. 경기민요 노랫가락 | 무속노랫가락[ㄱ)본향노랫가락 ㄴ) 상산노랫가락 | 창부타령 | 대감타령 | 청춘가| 이별가 | 사발가 | 베틀가| 오돌독 | 한강수타령 | 태평가 | 닐리리야 | 양류가 | 풍년가 | 매화타령 | 군밤타령 | 경복궁타령 | 아리랑 | 긴아리랑 | 도라지타령 | 노들강변 | 오봉산타령 | 뱃노래 | 자진뱃노래 | 방아타령 | 자진방아타령 | 사설방아타령 | 는실타령 | 건드렁타령 | 도화타령 | 사철가(화전놀이) 2. 경기잡가 유산가 | 적벽가 | 제비가| 소춘향가 | 집장가 | 형장가 | 평양가 | 선유가 | 출인가 | 십장가 | 방물가 | 달거리(월령가) | 풍등가 | 금강산타령 | 토끼화상 | 범벅타령 | 자진방물가 | 변강쇠타령 | 장기타령 | 만학천봉 | 곰보타령 | 병정타령 | 기생타령 | 육칠월 | 생매잡아 | 바위타령 | 맹꽁이타령 | 한 잔 부어라 | 비단타령 | 국문뒤풀이 | 개성팔경 가 3. 경기입창 놀량 | 앞산타령 | 뒷산타령 | 자진산타령 | 개고리타령 4. 경기재담소리 장대장타령 제4부 남도소리 1. 남도민요 육자배기 | 자진육자배기 | 흥타령 | 진도아리랑 | 보렴 | 새타령 | 화초사거리 | 삼산은 반락 | 개고리타령 | 농부가 | 남원산성 | 까투리타령 | 강강술래 | 둥 당개타령 2. 충청도민요 흥타령 | 등타령 | 총각타령 3. 제주도민요 오돌또기(둥그대당실) | 이야홍타령 | 너영나영 | 이어도사나(해녀 노 젓는 소리) | 서우제소리 4. 단가 사철가 | 사철가 2 | 명기명창 | 백발가 | 소상팔경 | 초한가 | 호남가 | 불수빈 | 진국명산 | 강상풍월 | 운담풍경 | 죽장망혜 | 홍문연가 | 조어환주 | 광대가 | 만고강산 | 편시춘 | 공도라니 | 대장부한 | 고고천변 | 녹음방초 | 백구가 | 청석령 지나갈제 5. 가야금병창 김매기노래 | 꽃타령 | 날 오라네 | 내 고향의 봄 | 님 그린 회포 | 님이 그리워 | 복숭아꽃 | 둥둥게타령 | 멸치잡이노래(남해뱃노래) | 박꽃 핀 내 고향 | 범벅타령 | 봄노래 | 봄총각 | 가야금 애상곡(가야금타령) | 뽕 따러가세 | 제주남풍가 | 상사천리몽 | 애수의 가을밤 | 청산별곡 | 꽃이 피였네 | 노들강 초록물 | 발림 | 신방아타령 | 야월삼경 | 풍년노래 | 함양양욠삼경 |찠자뒤풀이 | 사랑삼경 |기생점고 | 군로사령 | 중타령 | 감계룡 | 유색황금눈 | 구만리 | 피점고 | 제비노정기 | 가난타령 | 화사자 | 여보라 주부야 | 가자 어서 가 | 제기럴 붙고(토끼가 욕하는 대목) | 관대장자 | 화초타령 | 올라간다 | 심봉사 좋아라고 | 그 자리에 엎드러 | 방아타령 | 어전사령이 나간다 | 천지신령님이 | 예 소맹이 아뢰리다 | 얼씨구나 절씨구 | 화용도 | 장승타령 제5부 동부소리 1. 경상도민요 밀양아리랑 | 울산아가씨 | 쾌지나칭칭나네 | 상주모심기노래 | 영남들노래 | 상주아리랑| 영천아리랑 | 옹헤야(보리타작노래) | 진주난봉가(진주낭군, 시집살이노래) | 담바귀타령 1 | 담바귀타령 2 | 성주풀이 1 | 성주풀이 2 | 골패타령 | 통영개타령 2. 강원도민요 한오백년 | 강원도아리랑 | 정선아리랑 | 정선아라리 | 정선엮음아라리 | 정선자진아라리 제6부 송서 추풍감별곡 | 삼설기 | 적벽부-서도 | 전적벽부-경기 | 후적벽부-경기 | 어부사 | 춘야연도리원서 | 등왕각서 | 짝타령 | 출사표 제7부 불가 회심곡-소릿조 | 회심곡-불가조| 화청[ㄱ)반회심곡 | ㄴ)육갑시왕원불지옥십악업] | 탑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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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민요 박수관 명창「델픽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델픽위원회(IDC)에서는 2010년 6월 28일 그 동안 사라질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동부민요와 박수관 명창(대구예술대 석좌교수)을 델픽세계무형문화재(Delphic Worl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IDC(International Delphic Council)는 수많은 무형문화유산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거나 원형이 변질되어가는 세계의 전통예술의 보존과 전승을 위하여 델픽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이번에 지정된 동부민요는 그 동안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던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백두대간의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에서 불리워지던 소리로서 호방하면서도 민초들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각설이패까지 쫓아 장타령 등을 배우고 상여소리에 매혹되어 상여를 따라가곤 하던 박 명창은 12세 때 김로인이라는 스승을 만나 , , , 등 사라져 가는 동부민요의 원형을 배웠다. 박 명창은 사재를 털어 대한민국동부민요보존회와 동부민요수련원을 건립하여 그 보존과 전수에 진력해 왔다. 1997년 8월 12일 「한국 不傳民謠에 관한 연구」논문을 러시아 이르쿠츠크 국립사범대학교 주최 국제학술대회와 2000년 3월 31일 유네스코(UNESCO) 국제학술대회에서「한국부전민요의 보전책」논문을 발표하였고 2004년 전국국악학 동부민요 학술대회를 개최하여「동부민요의 예술세계」논문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대구예술대 한국음악과 석좌교수로서 후진양성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UN(FAO)본부, 미국 카네기 메인홀, 링컨 센터, 케네디 센터 콘서트홀, 청와대 초청공연 및 34회의 개인발표회와 미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국내․외에서 500 여회 한국동부민요 공연과 국립국악원, 국립민속국악원 초청 단독 공연 및 협연 4회, 전남도립국악단 5회, 경북도립국악단 3회, 대구시립국악단 2회,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2회,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과 2회 협연하였다. 2000년 12월 29일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존과 전승보급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재청장 공로패와 2008년 12월 10일 21세기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국악발전부문)을 받은 바 있는 박 명창은국내에서 - 동부민요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장관상, 국무총리상, 대통령상 수상과 국민포장, 환경부 홍보대사 러시아 - 바이칼스크 국제음악제 초청공연 외 다수, 글링카 국립음대 명예음악박사・명예교수, 국제자연사회과학원 원사, 타워상(특정 분야에 업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 독일 - 하이델 베르그 만하임 국립음대초청 국제음악제 공연(모르겐 신문 극찬), 매년 180 여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 (ITB 2007, 2009, 2010년) 3회 초청공연 이탈리아 - 로마 기오네극장에서 협연 공연한 파바로티 스승 쥬제페 타데이로부터 극찬받음. 한・이 교류음악회에서 파르마 예술단체 감사패 프랑스- IRMA 세계전통음악가인명사전에 한국인 최초 등재, 르망 콩째르잘 극장과 파리공연 후 르망드 신문 극찬 UN - UN(FAO)본부총회 초청공연 후 (185개국의 대통령, 장관, 대사 등 1800 여명 참석) 아이다라 의전국장의 한국동부민요공연 대평가. UN(FAO)기아와 난민위한 초청공연 다수. UN감사장 그리스 - 국가행사로 아폴로 신전과 파르나소스 산 정상공연 아시아 -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 정부 및 UN(FAO)초청공연,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세계델픽대회 금메달 미국 - 링컨센터에서 9・11 무역센터 테러희생자 추모초청공연 때 대호평. 10년째 뉴욕에서 세계한국국악경연대회 개최 및 심사위원장. DANA 뮤직상 금상, 마틴루터 킹 목사 감사패, 미국대통령상 금상 아프리카 - 세네갈, 감비아 정부 및 UN(FAO)초청 기아와 난민을 위한 공연, 남아공 넬슨만델라 재단 초청 아프리칸 왕족회의 공연. 이스턴 케이프 코사국왕 초청공연. 아프리칸 로열 어워드 수상 (국제축구연맹 블래터 FIFA회장과 같이 수상) 이와 같이 아시아, UN, 미주, 유렵, 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박수관 동부민요의 귀중성이 인정되어 델픽세계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되었다. 프랑스 IRMA세계전통음악가 인명사전에 한국인 최초 등재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박 명창은 현재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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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별공연 2월 12일1. 일시 : 2010년 2월 12일 2. 장소 : 국립남도국악원 대극장 진악당 3. 장소 : 061- 540-4033 1. 기악 합주 - 남도굿거리 2. 가야금병창 - 백발가, 수궁가 중 고고천변 3. 무용 - 흥타령춤 4. 판소리 - 심청가 5. 기악 독주 - 거문고산조 6. 무용 - 진도북춤 7. 민요 - 달맞이, 널뛰기, 진도아리랑 8. 사물놀이 - 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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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이선 가야금병창 발표회 가야금 병창 바탕전 두 번째 - 흥부가 - 9. 27● 일시 : 2009년 9월 27일(일) 오후 5:00 ~ 6:30 ● 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 주최 : 이선 ● 가격 : 초대공연 ● 문의 : 010-2328-1295 ■연주곡목 1. 단가 -- 백발가 2. 판소리 -- 흥보가 - 중타령 - 돈타령 -- (유성음반 복원 作) - 집터잡는 대목 - 유생황금눈 (해설) - 구만리 - 제비점고 - 제비노정기 - 박타령 -- (유성기음반 복원 作) 3. 25현가야금 3중주 -- 뱃노래, 초소의 봄 4. 창작 가야금병창 실내악 협주곡(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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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의 국악여정-비상의 울림 (매주 금)일시 : 2009년 1월 23일 ~ 2월 27일 늦은 7시 30분 장소 : 서울 남산국악당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재)세종문화회관 문의 : 02-2261-0515 1월 30일 (금) 정예진 / 강은경 1. 단가 녹음방초 -정예진 2. 서공철류 가야금산조 - 강은경 3. 함양양잠가, 새타령 - 문수정, 김지현 외 4. 성금련류 가야금산조 - 정예진 5. 단가, 백발가 - 강은경 6. 민요 (야월삼경, 임그린회포, 범벅타령, 골패타령) - 정예진, 강은경외 11명 출연진 - 문수정, 김지현, 주문희, 이 선, 김희영, 신윤아, 정명숙, 김소예, 이은희, 신재희, 권귀진 연주자 - 장구 김청만 2월 6일 (금) 김경배 / 김민경 1. 초한가 2. 산염불, 자진염불, 개성산염불, 안주애원성, 함경도 애원성 3. 배배이굿 4. 몽금포타령, 개성난봉가, 간장타령, 금드렁타령, 풍구타령 5.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2월 13일 (금) 유 창 / 정경숙 1. 국문뒤풀이 정경숙, 정지숙, 이승중, 박옥주, 지정이, 서승연, 이빛나, 김정아, 안영은, 김노경 장점자, 김경미, 김남경, 김윤지, 김용환, 양선화, 정유나, 안소연, 박병권 사물 - 송우주, 장수미, 정다정, 이소은 2. 송서(경포대, 삼설기, 등왕각서) 김희자, 이기옥, 유옥분, 김민세, 고수자, 조경신, 김선주, 박금례, 이안복 서은희, 황종필, 이경희, 박정애, 박효지, 노송이, 권현희 3. 출인가 - 정경숙 4. 금강산타령 간기연, 황선희, 이하나, 이수완, 서혜인, 김경미, 김윤지, 양선화, 정유나, 안소연 5. 긴아리랑,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 유창, 정경숙 6. 태평가, 양산도, 밀양아리랑 김선주, 박정애, 박효지, 서승연, 노송이, 이빛나, 김남경 7. 노랫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정경숙, 유창 8. 비나리 - 유창, 이기옥, 이경희 9. 뱃노래, 잦진뱃노래 - 출연자 전원 2월 20일(금) 유옥선 1. 잡가중 단체 집장가 - 유옥선 외 15명 2. 이별가 긴 아리랑 - 유옥선 3. 민요메들리 - 청춘가, 릴리리야, 오봉산타령, 사발가, 자진방아타령 4. 회심곡 - 유옥선 외 제자들 5. 제주도 민요 - 오돌또기, 십경가, 이어도사나 한명순 1. 수심가, 엮음수심가 2. 자진아리, 나나니타령 3. 뒷산타령 4. 굼베타령, 투전놀이 2월 27일(금) 전숙희 / 최수정 1. 제비가 2. 금강산타령, 노랫가락, 청춘가, 태평가 3.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4. 방아타령, 사설방아타령, 자진방아타령 5. 양산도, 신고산타령, 궁초댕기 6. 비나리 7.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8. 장기타령 9. 창부타령 10. 뱃노래, 자진뱃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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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국악원과 함께하는 박수관 동부민요 12 월 3 일일 시 : 2008년 12월 3일(수) 19 시 장 소 :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 문 의 : 063-620-2332 박수관의 동부민요 ..... 동부민요는 백두대간의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지방에서 불리는 민요로서 호방하면서도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동부민요만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소리이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가슴에이는 애잔한 소리는 경상도 메나리토리를 잘 간직하고 있다. 오늘 공연은 우리 삶의 생로병사, 희노애락, 흥망성쇠의 자연의 섭리를 주제로 우리의 인생사를 그대로 영상을 보듯 소리꾼과 관람자가 하나가 되는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공연내용 1. 상주아리랑·뱃노래·궁초댕기 소리 / 박수관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피리/김영호, 대금/성수봉, 해금/박선호 가야금/이진, 거문고/최형욱 아쟁/박지용 타악/황상현 2. 태평무 구란영, 이선이, 이경희, 문희순, 최수복, 기정해, 박정숙, 이지은 3. 상주함창가·강원도아리랑 소리 / 홍송월, 박경선, 김용란, 정효숙, 김영자, 김옥숙, 박강희, 김서영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4. 정선아리랑·장타령 소리 / 박수관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5. 풍류춤 무용 / 홍은정, 김경주, 백연화, 고은주, 박이곤, 양수연, 6. 백발가 소리 / 박수관 춤/계현순 시자/김수연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7. 살풀이 무용 / 계현순 8. 상여소리·한오백년 소리 / 박수관 후렴 / 홍송월, 박경선, 김용란, 정효숙, 김순덕, 이정애, 이정이, 김옥숙, 박강희, 홍춘랑, 천선녀, 심명희, 김영자, 김서영, 최연옥, 김영자, 구란영, 이선이, 이경희, 문희순, 최수복, 기정해, 박정숙, 이지은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9. 오고무 춤 / 홍은정, 김경주, 백연화, 송은희, 박수영, 고은주, 박이곤, 김문영,안명주, 양정화 반주 장구/박광자, 꽹과리/황상현, 태평소/김영호 징/박선호 10. 치이야 칭칭나네·어랑타령 소리 / 박수관 후렴 / 홍송월, 박경선, 김용란, 정효숙, 김순덕, 이정애, 이정이, 김옥숙, 박강희, 홍춘랑, 천선녀, 심명희, 김영자, 김서영, 최연옥, 김영자, 구란영, 이선이, 이경희, 문희순, 최수복, 기정해, 박정숙, 이지은 반주 / 국립민속국악원 기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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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 音 齎 (향음제) 향사 박귀희 선생 15주기 추모 기념 공연 10 월 17 일“인생을 藝로 산 그의 예술, 그의 삶 “ 일 시: 2008년 10월 17일(금) 19시30분 장 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문 의: 010-9097-8800 “인생을 藝로 산 그의 예술, 그의 삶 “ 프로그램 1.가야금병창 단가 ‘백발가’ 가야금:강정숙 춘향전 중 ‘사랑가’ 가야금:가야금병창보존회와 제자일동 고수:정철호 2.가야금산조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가야금:이영희, 고수:정철호 3.판소리 심청가 중 ‘화초타령’ 노래: 안숙선, 고수: 정철호 4. 어린이와 함께하는 전래동요 가야금병창 노래:어린이가야금병창단 /고수:정철호 5. 무용-살푸리 무용: 정재만, 반주:국립국악원민속연주단 6 .사물놀이 김덕수/장구, 최종실/북, 이광수/괭가리, 남기문/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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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의 경기예음(藝音) 「한강수야!」무제 문서 일 시 : 2005년 11월 20일(일) 오후 6시 장 소 :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문 의 : 011 - 470 - 9402 유창의 경기예음(藝音)『한강수야!』 “ 김선달과 떠나는 경기소리여행 잔치 ” ‘전통이 현대화 되어야한다’ 혹은 ‘전통은 대중화 되어야 한다’는 말은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며 누구나 공감하는 명제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의 현대화·대중화문제는 그 당연성과 보편적 공감대 형성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고 실천하기 쉽지 않은 대명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경기소리극 ‘한강수야’는 경기소리의 큰 명제인 소리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려는 시도이다. 특히 ‘한강수야’는 흥겨운과 신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경기소리와 일상의 재담 등을 함께 만남으로 실제 관객들에게 흥겨움을 준다. 오는 11월 20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이번 공연을 준비한 유창 씨는 ‘유창하게 소리한다’라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경기소리에서 주목받고 있는 남자 명창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조교로 그동안 경기소리극 작업에 빠져 있었다. “장대장 타령, 맹인굿·춘양전, 봉이 김선달” 등 여러 소리극을 사재 털어 만들어 왔다. 이번 공연도 2000년부터 ‘경기소리극’ 작업에 주력해 온 유창 씨가 올해부터 소리극의 대중화와 새로운 소리극 만들기 작업을 위해 선보이는 공연으로 총 5장으로 구성됐다. 작품 내용은 황해도에서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를 내려오면서 각 지방의 민요를 극 과 음악을 중심으로 꾸민 총체 음악극이다. 이번 공연을 준비한 유창 씨는 “경기소리의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독특한 창법, 가사가 지니고 있는 극적인 면을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이는 유구한 역사와 세계 속에 그 독자성과 독창적인 소리로서 한국 민족의 특성을 잘 대변 하고 있는 경기소리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 할 것입니다. 특히 그 원전 속 음악적 이야기가 가 지고 있는 고유성을 되찾고자 경, 서도 소리를 가지고 그동안 소리 여행극을 만든 것 입니다. 저는 소리, 춤, 극이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경서도 소리극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연과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겠습니다”는 유창 씨. 이번 공연도 함께 호흡을 맞춰오던 만능 재주꾼 장두이(배우, 연출가, 인덕대학 방송연예과 교수) 씨가 대본과 연출은 맡았다. 장 감독은 “황해도에서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를 내려오면서 각 지방의 민요를 극과 음악을 중심으로 꾸몄습니다. 소리여행극의 묘미를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고 했다. 소리는 “유산가, 자진난봉가, 박연폭포, 몽금포타령, 양산도, 금강산타령, 긴아리랑, 이별가, 한강수타령, 뱃노래, 자진뱃노래, 노랫가락, 태평가, 사철가, 는실타령, 백발가, 회심곡, 창부타령, 삼설기” 등이 나온다. 스승 묵계월 명예보유자로부터 “명인명창으로서 타고난 재능과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우수한 연기력을 복합적으로 지니며, 자신의 뒤를 이어가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보기 드문 소리꾼”이라고 호평 받고 있는 유창 씨 저, 고음을 넘나들며 경기소리의 맛을 살려내는 시원스런 창법의 구사로 듣는 이로 하여금 경기소리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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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명창 유창의 경기예음 "한강수야" 11월 20일“ 김선달과 떠나는 경기소리여행 잔치 ” - 일 시 : 2005년 11월 20일(일) 오후6시 - 장 소 :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 주 관 : 묵계월경기소리보존회, Gio Arts Communications - 후 원 : (재)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재청 - 예술감독 : 유창(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조교) - 연 출 : 장두이(배우, 연출가, 인덕대학 방송연예과 교수) - 특별출연 : 묵계월(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명예보유자) 이은주(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 출 연 : 유창, 묵계월경기소리보존회원 - 문 의 : 02)984-7063, 017-572-7301 ‘유창하게 소리한다’라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경기소리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남자 명창, 유창(柳淌).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전수조교인 그가 독특한 극적 재미와 음악적 묘미를 충분히 살린 경기 소리극으로 색다른 재미와 감흥을 주려한다. 5장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은 황해도에서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를 내려오면서 각 지방의 민요를 극과 음악을 중심으로 꾸민 총체 음악극이다. “유산가, 자진난봉가, 박연폭포, 몽금포타령, 양산도, 금강산타령, 긴아리랑, 이별가, 한강수타령, 뱃노래, 자진뱃노래, 노랫가락, 태평가, 사철가, 는실타령, 백발가, 회심곡, 창부타령, 삼설기” 등이 만능 재주꾼인 장두이(배우, 연출가)의 무대연출과 만나 소리여행극의 묘미를 시원스럽게 전달해준다. 묵계월 명예보유자로부터 “명인명창으로서 타고난 재능과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우수한 연기력을 복합적으로 지니며, 자신의 뒤를 이어가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보기 드문 소리꾼”이라고 호평 받고 있는 유창은 저, 고음을 넘나들며 경기소리의 맛을 살려내는 시원스런 창법의 구사로 듣는 이로 하여금 경기소리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번 무대는 경기소리의 예맥(藝脈)과 예음(藝音)을 객석에 진하게 전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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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동부민요 학술적으로 조명 화제....최근 학술논문집도 발간2004년 춘계 전국국악학학술대회 국내에선 처음으로 함경 강원 경상도권에 산재한 동부민요만을 학술적으로 집중조명한 학술논문집이 발간돼 국내 민요사 연구에 획기적 전기가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 동부민요보존회와 한국전통음악학회가 주최하고 국립국악원, 단국대학교, (사)한국국악학회, 갑우문화원이 공동 후원한 '2004년 춘계 전국 국악학 학술대회'는 「동부민요의 예술세계」란 주제로 지난 3월 2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단국대 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성료됐다. 이날 1-2부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권오성 한국국악학회장(한양대 교수)은 '한국 향토민요의 전승 보급 및 확대', 한만영 前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동부 민요의 범패(홋소리)의 음악적 특성의 상호 연관성에 관한 연구', 이장열 무형유산정책연구소장은 '한국 무형문화재 정책과 전통민요의 보존', 강등학 한국민속학회장(강릉대 교수)은 '경북지역 논메기 소리의 기초적 분석과 지역적 판도',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장은 '동부민요의 음악과 문화에 대한 조망', 권영철 대구가톨릭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문학박사)는 '동부민요의 문학성', 이소라 민족음악연구소 대표(배제대 겸임교수)는 '강원지방의 회다지 소리', 동부민요 명창 박수관 대한민국 동부민요보존회장(명예 음악학 박사)은 '동부민요의 가치관 정립과 보존의 중요성'이란 발제논문을 발표했고, 좌장으로는 서한범, 김영운 교수와 최종민, 구윤국, 유종목, 유영대, 이동복, 김혜정, 장휘주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선 그동안 국악계에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 '전쟁가'와 '백발가'의 민요학적 가치가 인정됐으며 실제 그 노래를 스승인 김로인(金路人)한테 전수받아 보급중인 동부민요 소리꾼인 박수관 회장의 창법은 이날 세미나를 통해 동부민요의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논문 발표자들은 한결같이 "현재 한국 음악 교육이 너무 서양교육 위주로 이뤄져 향토민요에 대한 체계적 정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는 물론 국제 음악 무대에서 제대로 된 발표회가 없어 민요가 점차 사장될 지경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면서 정부 차원의 민요보존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만영 교수는 동부민요의 음악성에 대해 분석하면서 "메나리토리는 동부민요의 대표적 율조로 미, 솔, 라, 도, 레의 5음계로 이뤄져 있고 주요 음은 미, 라, 도이며 보통 라, 미 음으로 마친다"고 전제한 뒤 "소리는 투박하며 흥겹고 경쾌한 점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탄식 애원조가 밑바닥에 깔려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또 "대표적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도 음계, 박자, 연주방식, 연주 지역까지 동부민요가 거의 유사해 범패가 동부민요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본다"면서 "향후 이 대목에 대해 더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보형 회장은 "1973년 한만영 교수가 「태백산맥 이동지방의 민요선법」이란 논문을 발표될 즈음부터 국내에서도 동부민요란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서도 경기 남도 민요란 말만 보편화됐다"고 했다. 이 회장은 "동부민요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의 독자적인 음악문화권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전통적인 지역 행정 분할이 동부민요권과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학문적으로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민요를 메나리토리권으로 묶을 수 있게 된 만큼 동부민요 정체성 찾기에 국악인들이 노력해야 될 때"라고 역설했다. 이날 권영철 교수는 동부민요의 빼어난 문학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제의, 노동, 장사, 유희, 애원성, 각서리 타령 등 모두 12가지 문학적 갈래로 구전 동부민요를 분류하기도 했다. 마지막 논문 발표자로 나선 박수관 회장은 "서양음악이 한국에 유입된 지 백년이 넘는 현 시점에서 오늘날 민요는 산업화로 인해 일부 민요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불려지지 않고 있다"면서 한시바삐 전국민적인 민요살리기 붐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한국 전래 민요의 구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또 미국의 음악학자 키비의 '음악 재현가능론'과 스크루톤과 다나베 히사오의 '재현 불가능론'을 상호비교하면서 제3의 이론인 '완전 재현불가능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음악은 내포하는 상징성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동부민요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선 더 많은 민요 보존회가 결성되고 물론 명창 발굴 등에도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박수관 씨가 지난 10여년 간 동부민요의 한 장르로 UN, 미국 케네디센터 등 17차례의 개인 발표회와 국제 무대를 비롯 160여 차례에 달하는 동부민요 공연으로 동부민요 보존에 큰 기여한 공로를 학술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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